해외입양인연대 주최 제10회 모국방문 행사, 미국 등에서 12명 "친부모 찾으러 왔어요" 
작년엔 3명 가족 상봉 기쁨, 마음속 깊은 상처 치유 기대
"더 나은 삶을 선물해줘 감사하다 말하고 싶어요, 입양 당시의 결정을 이해한다고 말하려 합니다"
"내가 나은 내 아이들이 나를 꼭 닮은 것처럼 나도 친부모를 닮았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어린 시절 해외로 입양돼 양부모의 품에서 성장한 입양인들이 모국인 한국을 처음 방문해 친부모 찾기에 나섰다.

해외입양인연대가 마련한 제10회 모국방문행사(First Trip Home) 행사에는 미국, 노르웨이, 덴마크 국적의 해외입양인 15명이 참가했다.

친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평생 안고 살아온 참가자들은 방한 기간 가족과 만나게 되기를 고대하지만 입양 당시의 자료가 상세하지 않은 데다 어렵게 찾아도 친부모의 기피 등으로 쉽지 않다. 지난해 행사에서는 19명이 방한해 3명이 가족과 상봉했다.

해외입양인연대 관계자는 "입양인은 대체로 좋은 환경에 입양돼 성장했음에도 왜 입양됐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뿌리에 대한 그리움이 마음속 깊은 곳에 상처로 자리하고 있다"며 "모국 방문만으로도 어느 정도 힐링이 되지만 근본적인 치유는 친부모와의 상봉"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953년부터 지난해까지 해외 입양인은 16만 7천710명에 이른다. 친부모를 찾고 있는 미국 출신 입양아 6명의 스토리를 정리했다. 


◇ 지준성(31·미국) "결코 원망하지 않습니다"

1986년 3월 7일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173-8의 나산부인과의원에서 출생했다. 1986년 6월 21일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미국으로 입양됐고 미주리 캔자스시티 법무법인에서 변호사로 근무 중이다.

친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성장한 지 씨는 2016년부터 가족찾기를 시작했고 홀트를 통해 친모는 당시 20살의 고교 자퇴자로 서울의 공장에서 근무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가족의 역사와 한국을 배우는 것은 내 인생에서 아주 의미 있는 일이라 방한했습니다. 가족을 만나면 지금 잘살고 있고 행복하다는 것과 원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해외 입양 당시의 모습(사진 좌측)과 현재


◇ 김수경(혹은 경수·51·미국)​​​​​​​  "미국서 좋은 삶…감사해요"

1966년 7월 7일 경기도 파주 출생. 1967년 5월 2일 친모가 한국사회봉사원에 입양을 의뢰했고, 위탁모 노순자 씨를 거쳐 1967년 4월 28일에 미국으로 입양됐다.

27년째 미용사로 근무하며 아들(30)과 딸(24)이 있다. 친부모는 22살에 결혼해 7개월간 함께 살았다. 친모의 성은 김 씨며 당시 친부는 주한미군으로 상병이었다. 임신 3개월 때 친부가 미국으로 떠났고 어머니가 입양의뢰 전까지 키웠다.

"친어머니를 만난다면 미국에서 좋은 삶을 살았고 그런 기회를 주어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입양 당시 모습(사진 좌측). 결혼식(가운데)과 현재


◇ 문도희(37·미국)​​​​​​​ "내가 부모님을 닮았나요?

1980년 1월 28일 낮 12시 27분 출생. 출생 장소는 불확실하며 홀트아동복지회 근처의 산부인과로 추정된다. 태어나자마자 홀트로 입소됐고, 현재 이름은 당시 마포경찰서의 조사관이 지어줬다. 1980년 10월 미국 하와이로 입양됐다. 하와이에서 가족과 주유소를 운영하며 4명의 아들이 있다.

2009년부터 친가족 찾기를 시작했다. 어머니의 임신 사실을 고모와 친부만 알았고 다른 가족에게는 알리지 않았다는 것, 당시 어머니는 18살에 성이 '정'이고 아버지는 24살에 '문'씨라는 것과 둘이 같은 공장에서 일했다는 사실 등을 확인했다.

"입양 당시 상황이 궁금하고 내 아이들이 날 닮은 것처럼 나도 부모를 닮았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미국 입양된 문도희 씨의 입양 당시(사진 좌측)와 현재


◇ 유정현(39·미국) "날 버린 것 용서했습니다"

1978년 6월 3일 태어났고, 1978년 11월 25일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은 쪽지와 함께 서울 북부경찰서 앞에서 발견됐다. 한국사회봉사회에서 위탁가정(여운순 씨)을 거쳐 1979년 4월 10일 미국으로 입양됐다. 두 아이의 엄마로 살고 있다.

좋은 양부모를 만나 미네소타주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음에도 친부모를 만나고 싶은 열망을 누를 수 없어 10년 전부터 찾고 있다.

 "입양기관에 더 이상의 정보가 없지만 단서라도 찾고 싶은 심정에 방한했죠. 친부모에게 날 버린 것을 용서했다고 말하고 손자와 손녀의 존재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유정현 씨 입양 당시(사진 좌측)와 현재


◇ 황미옥(37·미국) "혹시 가족 병력이 있었나요"

1980년 2월 25일 출생으로 1981년 4월 8일 친모가 홀트아동복지회 부산사무소에 입양을 의뢰해 미국으로 입양됐다. 입양 후 양부로부터 학대를 받는 등 불우하게 성장했다. 양모는 항상 친가족을 찾아보라고 권유했다.

하버드대를 졸업했고 현재 예술대학원 휴학 중이다. 2011년 자가면역질환인 전신성피부경화증으로 5년 시한부 진단을 받고 3년간 침대에서 생활하며 치료를 받았다.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됐으나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다. 언제 죽을지 몰라 그 전에 꼭 친부모를 만나고 싶다는 희망에 방한했다. 홀트에서 친모를 찾았다지만 상봉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황 씨는 "친모를 만난다면 임신 당시 상황에 대해 듣고 싶고 가족 병력이 있는지와 집안에 무속인이 있는지 물어볼 것"이라고 했다.


황미옥 씨의 입양 당시 모습


◇ 이연희(29·미국) "더 나은 삶 선물 감사해요"

1988년 12월 20일 부산시 북구의 노영옥산후조리원에서 태어난 직후 친모가 동방사회복지회 부산지사에 입양을 의뢰했다. 미숙아로 태어났기에 황달에 걸려 춘해병원에 입원했고 혈관종이 있었다. 1989년 2월 25일 백순자 씨 가정에 위탁됐고, 1989년 7월 26일 미국으로 입양됐다. 워싱턴주립대 재학 중이며 시애틀 아동 재활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고교 시절부터 친가족 찾기에 나서서 지금까지 파악한 친가족 정보에 따르면 김 씨인 친부는 당시 23살이었고, 전남 완도 출신으로 이 씨인 친모는 19살이었다. 1988년 초에 만나 연애를 했고 결혼은 하지 않았던 두 사람은 부산에 있는 신발공장에서 같이 근무했다.

"친부모에게 더 나은 삶을 선물해줘 감사하다는 것과 당시 그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이해한다고 말하려고 합니다".


이연희 씨 입양 당시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