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 한국대사관 진입 또는 英정보당국 '안가' 제공 가능성
97년 황장엽 망명 당시 주중 韓대사관서 남북 일촉즉발 대치

(서울=연합뉴스) 이귀원 기자 =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 공사의 한국으로의 망명 과정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우리 정부가 외교관계 영향을 우려해 영국에서의 탈북은 물론 한국으로의 입국과정에 대해서도 굳게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7월 중순께 잠적한 것으로 알려진 태 공사는 영국에서 제3국을 거치지 않고 같은 달 말께 한국으로 들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최종 망명까지 약 한 달이 걸렸다는 얘기도 있어 망명 과정이 7월 초에 시작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과정에서 북한과의 치열한 첩보전과 동시에 한국과 영국의 관계 당국 간에도 긴밀한 협력, 공조체계가 가동됐을 것으로 관측된다.

우리 외교부는 영국 외교당국과, 또 우리 정보당국은 영국 해외정보국(MI6)과 각각 손을 잡고 태 공사의 탈북을 망명이라는 성공작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전직 국내 정보기관 고위관계자는 19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일반적으로 외교당국은 상대국 외교당국, 정보기관은 상대국 정보기관의 협조를 받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이 우리와 우방국이지만 북한과도 외교관계를 맺고 있어 태 공사의 망명 협조에 다소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었겠지만 최근 국제사회가 북한을 따돌리는 분위기이고, 북한이 인권탄압국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 영국 정부의 협조를 얻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외교소식통도 "외교적인 사안이 발생하면 주재국 당국에 통보하고 신변보호라든가 당연히 거쳐야 할 협조들을 받게 된다. (주재국이) 망명을 원하는 당사자의 자유의사를 확인하면 당연히 협조하게 된다"면서 영국 측의 적극적인 협력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태 공사가 탈출 당시 주영 한국대사관에 들어간 것으로 여겨진다고 보도했지만, 현지 우리 대사관 측은 사실무근이라며 부인했다.

영국 해외정보국에서 태 공사 가족에 '안전가옥(안가)'을 제공했을 가능성도 있다.

전직 정보기관 고위 관계자는 "주재국과 협조가 잘되면 현지 정보기관이 안가를 제공하는 편의를 봐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태 공사 가족이 탈출 초기에 영국 해외정보국(MI6)이 안가를 지원하는 등 도왔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태 공사의 잠적 이후 소재를 파악하려는 북한과 한국으로의 안전한 망명을 성공시키기 위한 한·영 정보당국 간에 치열한 정보전도 벌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에서 외교관은 핵심 엘리트 계층이라는 점에서 북한 당국은 태 공사의 망명 저지를 위해 총력전에 나섰을 것으로 관측된다.

더군다나 태 공사 본인이 상당히 비중 있는 고위급 외교관이고 부인 오혜선도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이자 노동당 군사부장을 지낸 오백룡(1984년 사망)과 아들 오금철 총참모부 부총참모장의 친인척으로 알려져 북한은 태 공사 찾기에 혈안이 돼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 주요 인사의 탈북 시 남북 간 치열한 첩보전은 1997년 2월 주중 한국대사관에 망명신청을 한 고(故) 황장엽 당시 북한 노동당 비서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주중 북한대사관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북한인 150여 명을 동원해 주중 한국대사관을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일종의 '무력시위'를 전개했다. 10여 대의 차량을 동원해 우리 공관 진입을 시도하기도 했으며, 국가안전보위부 산하 정예 특공요원 수십 명을 베이징에 파견하기도 했다.

이에 우리측 요원들은 대사관내에서 황 비서와 숙식을 같이하며 특급 밀착경호를 펼쳤다.

황 비서의 숙소 창문에는 저격용 총이나 유탄발사기, 독가스 공격에도 신변보호가 가능한 철판을 설치하고, 군용철모와 방탄조끼도 본부로부터 지원받았다. 음식물 속 독극물 투입에 대비해 본부로부터 전속 요리사와 함께 검식용 은수저 1벌을 지원받기도 했다.

황 비서는 중국 정부의 동의에 따라 같은 해 3월 극비리에 필리핀으로 이동한 후 4월 20일 한국 땅을 밟았다.

다만 이번 태 공사의 경우 영국 내에서 북한의 입지가 중국과 다른 만큼 물리적 대응보다는 더욱 기민한 첩보전을 벌였을 가능성이 크고, 그리고 결과는 태 공사의 한국 망명 성공으로 끝났다.

lkw77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