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일관 무덤덤한 표정…짧게 "죄송하다"

(제주=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제주시 모 성당 기도여성 흉기 살해사건에 대한 현장검증이 22일 오후 진행됐다.

제주서부경찰서가 성당 주차장과 성전에서 진행한 현장검증에서 중국인 피의자 천궈루이(50)씨는 태연한 모습으로 범행 당시를 20여 분 간 재연했다.

천씨는 오후 1시 30분께 사건 현장인 성당 앞에 도착, 고개를 푹 숙인 채 천천히 경찰 호송차량에서 내렸다.

얼굴을 손으로 감싸 가렸다가 "얼굴을 가린 손을 내려라"라는 주변의 외침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손을 내려 얼굴을 보였다.

성당에 모인 신도와 인근 주민 100여명이 격양된 반응을 보였으나 천씨는 당황한 표정도 없었다. 그는 망상증세 외에는 정신분열증(조현증)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경찰의 수사결과대로 자신은 "(정신상태가) 정상"이라고 했다.

피해자와 유족에게는 어떤 심경이라고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죄송하다"고 짧게 답했다.

천씨는 태연한 모습으로 범행 당시처럼 천천히 걸으며 성전을 향해 걸어갔다.

경찰과 성당 측의 협의에 따라 성전 안에서의 범행 재연은 비공개로 이뤄졌다.

경찰에 따르면 성전 정문으로 들어간 천씨는 좌석 가운데로 걸어간 뒤 신도들이 평상시 앉는 좌석에 범행 당시 가지고 간 배낭을 놓고 그 안에 있던 흉기를 꺼내는 모습을 무덤덤하게 보여줬다.

이어 성체 앞(감실)으로 조용히 걸어간 후 뒤돌아서서 기도하는 피해여성 김모(61·여)씨를 흉기로 찌르는 모습을 망설임 없이 재연했다.

범행 후 달아나면서 성전 옆문 앞에서 흉기를 버리는 모습도 보여줬으나 경찰은 범행 직후 감식 현장에서 확인했던 흉기 유기장소와 다소 위치가 달랐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검증은 천씨가 도주로인 옆문으로 나와 걸어서 성당을 빠져나가는 모습까지 재연됐다.

천씨가 성전으로 오가는 동안 신도들은 "나쁜 놈, 내 친구를 왜 데려갔어"라고 소리를 지르는가 하면 "뭐하러 제주 땅에 와서…"라며 채 말을 잊지 못하고 주저앉는 신도도 있었다.

그러나 불상사 없이 진행하자는 성당 측의 노력으로 별 탈 없이 마무리됐다.

지난 13일 무사증으로 제주에 온 천씨는 나흘 만인 17일 오전 8시 47∼49분 성당에 침입 혼자서 기도하고 있던 김씨를 흉기로 수차례 찌르고 달아났다가 도주 7시간 만에 40여㎞ 떨어진 서귀포시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피해자 김씨는 범행 직후 119구급대에 "공격을 받았다"고 신고한 뒤 의식을 잃고 병원 치료 중 다음날인 18일 오전 숨을 거뒀다.

경찰은 애초 천씨가 "김씨가 성당에서 혼자가 기도하는 것으로 보자 감정이 좋지 않은 전 부인 2명이 떠올라 화가 나 범행했다"고 진술했으나 천씨의 거주지인 중국 허베이성 공안과 공조, 진위를 따질 계획이다.

경찰은 범행 전 천씨가 흉기를 미리 산 데다 해당 성당을 사전 답사한 점도 드러나 계획 범행으로 추정, 계획 범행을 은폐하려고 비합리적 진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범죄 사실 입증과 증거 확보에 필요한 조사를 대부분 마쳐 23일 사건을 검찰로 송치할 예정이다.

kos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