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김미화, 'MB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에 첫 조사신청
문화예술대책위, 내일 이명박·유인촌·신재민 조사신청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피해자인 소설가 황석영(74)과 방송인 김미화(53)가 25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민관합동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에 나와 피해 조사신청을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작성된 이른바 'MB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진상조사위에 조사신청이 이뤄진 것은 처음이다.

황석영은 이날 오전 서울 광화문 KT빌딩의 진상조사위 사무실에 출석해 조사신청을 한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일찌감치 극우 세력에게 블랙리스트조차 필요 없는 불온한 작가로 찍힌 채 살아온 터라 새삼스럽게 피해를 언급하는 게 쑥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최근 문제를 보면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조사신청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김미화는 "국정원에서 (MB 블랙리스트) 발표가 있기 전보다도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훨씬 힘든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며 "밝혀진 이후부터 오늘까지 엄청나게 고통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는 "사실 검찰의 참고인 조사를 받기 전까지는 그렇게 화가 나진 않았다"며 "참고인 조사를 받으면서 국정원에서 작성한 저에 관한 굉장히 많은 서류를 보면서 국가가 커다란 권력을 이용해 개인을 사찰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매우 불쾌하고 화가 났다"고 소회를 밝혔다.

김미화는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직접 확인한 많은 국정원 자료들에 국정원장 지시, 민정수석 요청, 청와대 일일보고 등의 명목으로 '특정 인물에 관해서 계속 관찰하고 보고해라'라는 내용이 적시돼 있는 점을 정부의 사찰 근거로 제시했다.

그는 "처음엔 '연예인 건전화'처럼 표현이 다소 말랑말랑했지만 갈수록 '골수좌파 연예인', '종북세력 연예인', '소셜테이너' 등으로 과격하게 변했고 맨 마지막엔 '수용불가 김미화'로 돼 있다"며 "제가 어디서 수용불가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어 방송사, 경제단체, 광고사, 정부 유관기관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노출되지 못하게 막고 활동 자체를 못하도록 한 증거자료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김미화는 2010년 기자회견을 통해 블랙리스트 존재 근거로 SBS 사장 명의의 문건을 공개한 것과 관련해 당시 한 인터넷 언론사 기자가 자신을 사문서위조 혐의로 경찰에 자신을 두 차례나 고소했는데, 이를 매우 고무적으로 평가하는 국정원 서류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증언했다.

김미화는 "서류들을 보기 전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보고 나서는 정말 기가 막히고 과연 이것이 내가 사랑했던 대한민국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했다.

황석영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국정원 등에 의해 조직적으로 자행된 사찰과 탄압 사실을 공개했다.

황석영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남북 협력을 위해 추진하던 '알타이 경제문화 포럼'에서 북한을 배제하라는 청와대 지시를 거부한 직후, 문화부 출입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이제부터 정부 비판을 하면 개인적으로 큰 망신을 주거나 폭로하는 식으로 나가게 될테니 자중하라'는 경고를 들었다고 밝혔다.

황석영은 2011년부터 국정원에서 흘리지 않고선 일반인은 알 수가 없는 과거 방북 당시 혐의 내용이 짜깁기돼 인터넷상에 퍼졌으며, 자신이 쓴 광주항쟁 기록('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이 북한 책을 베꼈고, 자신이 작사를 한 '임을 위한 행진곡'도 김일성의 지령을 받아 제작됐다는 등의 왜곡된 사실이 유포됐다고 전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선 2014년 '세월호 참사 문학인 시국선언'에 참여한 후 이탈리아 로마대학의 작가초청 행사와 프랑스 파리 도서전 등 초청받은 해외행사에서 배제되고, 영화, 뮤지컬,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의 제작 제의가 돌연 취소되는 일을 겪었다고 했다. 또한 당시부터 은행에서 정기적으로 검찰 요청으로 금융거래정보를 제공했다는 통지를 받았다고 했다.

황석영은 이와 관련, 과거 방북 혐의를 조작해 온라인에 배포한 배후와 해외 도서전 배제 과정, 검찰의 금융거래정보 파악 이유를 밝혀달라고 진상조사위에 정식으로 요청했다.

진상조사위는 지난 7월 말 출범 당시 박근혜 정부 때 발생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의 진상조사를 목표로 삼았으나, 유사한 일이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부터 있었다는 사실이 최근 국정원 자료를 통해 확인되면서 이른바 'MB 블랙리스트'도 조사 대상으로 삼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진상조사위는 이날 두 사람의 증언이 문화예술인들이 진상조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진상조사위는 배우 문성근을 비롯해 권칠인, 변영주, 김조광수 감독 등 영화인들이 추가로 조사신청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예술인들이 결성한 '적폐청산과 문화민주주의를 위한 문화예술대책위원회'는 26일 이명박 전 대통령과 유인촌 전 문체부 장관, 신재민 전 문체부 차관에 대한 조사신청도 할 계획이다.

유 전 장관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문체부 장관으로) 있을 때 문화예술계를 겨냥한 그런 리스트는 없었다"며 "요새 세상(정권)이 바뀌니까 그러겠구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배제하거나 지원을 한다는 게 누구를 콕 집어 족집게처럼 되는 일이 아니다. 당시 지원 현황 같은 것을 보면 금방 나올 일"이라고 했다.

abullapi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