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화재 부상자·구조자·소방관 트라우마 심각
"사이렌 소리만 들려도 화들짝" 불안·죄책감 호소

(제천=연합뉴스) 윤우용 이승민 기자 = "어제는 응급차 소리에 놀라 나도 모르게 입원실이 있는 4층에서 1층으로 뛰어 내려오더라구요. 또 불이 난 줄 알고"

29명이 희생된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현장에서 중학생 손자와 함께 15명의 소중한 생명을 구한 이상화(69)씨는 요즘 빨간색을 일부러 쳐다보지 않는다고 한다.

참혹한 화재 현장에서 자신의 손을 붙잡고 "살려달라"고 절규하던 희생자들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서다.

화재 현장에서 허리를 다쳐 입원 치료를 받는 이씨는 최근 병문안 온 친구들과 함께 인근 식당을 찾았다가 가스 불 켜는 모습을 보고 바로 식당 밖으로 나왔다고 했다.

병실까지 들려오는 소방차·응급차 소리에 도통 잠을 이룰 수 없어 병실을 나와 집에서 자기도 한다.

수면제를 먹어도 2시간 이상을 자지 못한다.

TV 뉴스는 아예 보지도 않는다. 제천 화재 참사 뉴스를 접하기가 두려워서다.

같은 병실에 입원한 손자(15)도 밤에 이상한 소리를 자주한다고 이씨는 전했다.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이씨는 오는 30일 퇴원한 뒤 조용한 곳으로 들어가 심리적인 안정을 찾을 예정이다.

그런 다음 다친 척추를 치료받을 계획이다.

그는 화재 현장에서 다쳐 6주 진단을 받았다.

화재 당일 평소처럼 헬스장에서 운동하던 이 할아버지는 손자와 함께 15명의 목숨을 구한 '화재 영웅'이다.

이씨처럼 화재 현장에서 다친 이들과 구조·진압 작전을 펼쳤던 소방관이 심각한 트라우마로 고통을 겪고 있다.

제천소방서 구조대 김모(38)씨는 "한명이라도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송한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라면서 "피곤하지만 잠을 제대로 못자고 고통스러워하는 대원들이 많다"고 전했다.

도 소방본부는 제천소방서 소방대원들을 상대로 트라우마 심리검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소방본부는 심리검사, 설문조사를 통해 트라우마 고위험군을 선별하고 심층 상담을 통해 치료할 계획이다.

제천시의 한 관계자는 "지난 22일부터 부상자를 대상으로 심리지원을 하는 데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으로 고통을 받는 이도 있다"고 전했다.

심리지원에 나선 한 의사는 "부상자들이 불면, 우울증, 불안, 위장 장애, 소화불량 등을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는 부상자들에 이어 유가족과 사고현장에 투입된 소방관, 희생자 지인 등에 대한 심리지원에도 나설 예정이다.

yw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