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를 '음악 천국'으로 만든 70세 이장희

[화·제·인·물]

'울릉천국 아트센터'공사 7년만에 내달 개관
"자택 부지 기증…음악인들의 보금자리 되길"


자연과 여행이 좋아 음악의 길에서 벗어났던 이장희(71·사진)가 나이 칠십이 넘어 다시 음악이 인생의 1순위가 됐다며 설렘을 나타냈다. 그는 적극적인 음악 활동의 시작을 알리며 울릉도 자택 부지에 건립된'울릉천국 아트센터'를 다음달에 공식 개관한다.

이장희는 17일 울릉천국 아트센터 개관 기자간담회에서 "지금은 음악이 프라이어러티 넘버 원"(Priority no.1)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미국에서 2004년 귀국해 울릉도에 터를 잡고 주민등록상으로 울릉군민이 된 그는 울릉도 북면 송곳산 아래에 농장 부지를 사 '울릉 천국'이라고 이름 지었다.

그는 이땅의 1천652㎡(약 500평)를 울릉도에 기증해 2011년 아트센터 걸립을 위한 첫 삽을 떴다. 아트센터는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지어졌으며 150명 규모의 공연장과 카페테리아, 쎄시봉 자료 등이 비치될 전시홀을 갖춘 공간으로 5월8일 개관한다.

그는 "처음에는 평화롭게 살려고 왔는데 보물처럼 아름다운 섬에 멋진 집 하나 지으면 괜찮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이장희는 1971년 인기 DJ 이종환의 권유로 1집 '겨울이야기'를 내면서 데뷔했다.

"사실 제가 노래는 빵점이었어요. 삼촌 친구였던 조영남 형이 '장희야, 너 노래하지 말아라' 했으니까요. 그때 다들 외국 노래를 한국어로 번안해 부르길래, 한두곡 만들기 시작했죠. 송창식의 '애인', 김세환의 '좋은 걸 어떡해'였죠. 그걸 듣고서 이종환 형님이 직접 노래해 보라고 한 거죠."

인기 가수이자 작곡가로 이름을 알리던 그는 1975년 대마초 파동에 연루되며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구치소에서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그는 "이 시련을 계기로 완전히 다른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1980년대 초 미국으로 건너와 레스토랑을 운영한 그는 1988년 라디오코리아를 설립해 1989년 1월 첫 방송을 했다.

라디오코리아는 1992년 흑인들의 LA 폭동 당시 교민들을 구조하는 상황실 역할을 하며 성장했다. 그러나 2003년 전파를 임대한 중국계 방송이 전파료 인상을 요구하자 방송국 문을 닫고 2004년 귀국해 울릉도에 터를 잡았다.

미련없이 직책을 버리고 낙향한 도연명(陶淵明)처럼 그는 직접 굴삭기 사용법을 배워 연못과 밭을 만들어 '울릉 천국'이란 농장을 만들고 은퇴 후의 삶을 영위했다.

그는 울릉천국 아트센터에서 5월8일부터 9월15일까지 매주 화, 목, 토요일 주3회 상설 공연을 개최한다.

그는 "정말 작고 아름다운 소극장을 만들려고 했다"며 "음악하는 후배들이 편히 쓰면서 음악인들의 보금자리, 음악을 위한 요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