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관광 유커 대형 인명 사고에 잘못 인정 위로 전문까지 보내
"김정은,자신과 체제 부족함 드러내는데 머뭇거리지 않는 스타일"

(서울=연합뉴스) 최선영 기자 = "속죄합니다" "사과의 뜻을 표합니다"

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황해북도 교통사고로 중국인 관광객들이 숨진 것과 관련해 25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등에게 보낸 위로전문에 들어있는 내용이다.

우방인 중국을 향한 발언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대외적으로 이런 용어를 사용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적은 없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지적이다.

위로전문에서 김 위원장은 "우리 땅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하게 된 것은 참으로 비통한 일"이라며 "중국 동지들에게 그 어떤 말과 위로나 보상으로도 가실수 없는 아픔을 준데 대하여 깊이 속죄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사고가 북중 관계의 '돌발 악재'가 되는 것을 차단하려는 정치적 계산 발언이라기보다는 솔직하면서도 파격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표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 사전에서 '속죄(贖罪)'의 뜻은 "(저지른 죄나 과오 같은 것을) 다른 것으로 대신 바꾸거나 비겨서 털어 없애는 것"으로 남한의 어휘사전 의미와 다르지 않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속죄라는 단어를 주로 일본을 겨냥해 식민통치시기 만행에 대한 행동을 요구할 때 사용해왔다.

사실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잘못을 인정하는데 매우 인색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최고지도자의 '무오류(無誤謬)'를 주장해온 북한의 관행으로 볼 때 현안 해결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잘못을 시인해야 하는 때에도 변명 수준의 언급을 하며 '유감'을 표시하는 정도에 그쳐왔다.

김정은 집권 이후 그의 솔직하고 파격적인 발언과 행보가 눈길을 끌어온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내부적으로 잘못된 행태나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공개적으로 비판하거나 주저하지 않고 과감히 사과하도록 해왔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김영철 노동당 대남담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이달 초 남측 예술단의 첫날 평양 공연에서 남측 취재단의 공연장 입장이 제한된 것과 관련해 직접 찾아와 사과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관련 지시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로 김일성·김정일 정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지적이다.

김 위원장은 작년 조선중앙TV를 통해 전국에 중계된 육성 신년사에서 "언제나 늘 마음뿐이었고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 한 해를 보냈다. 더욱 분발하고 전심전력하여 인민을 위해 더 많은 일을 찾아 할 결심을 가다듬게 된다"며 고개를 숙였다.

2014년에는 평양 도심에서 아파트 붕괴로 대형 인명사고가 발생하자 시공 책임자인 최부일 인민보안상이 주민들 앞에 직접 나서서 사과하도록 하고 이를 노동신문에 전격 공개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솔직하고 파격적인 발언과 행보는 한번 목표를 세우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돌진하는 그의 대담한 스타일과 솔직한 성격에서 비롯됐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지난 3월 남측 특사단으로 방북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던 한 남측 대표단원은 김 위원장에 대해 "솔직하고 대담하더라"고 평했다.

집권 7년째인 김정은 위원장의 국정운영에 대한 자신감이 커가면서 그의 파격적 행보의 수위는 더 높아지는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한 고위층 탈북자는 "자신의 무오류성을 중시했던 김정일 위원장과 달리 김정은 위원장은 자신과 체제의 부족함을 드러내는데 머뭇거리지 않는 스타일"이라며 "어쩌면 핵을 포기하고 경제건설 총력에 나선 현재의 전략도 김정은 위원장이어서 가능한 것이었을 수 있다"고 말했다.

chs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