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세계적 문화평론가 이어령 교수 어머니의 자녀교육

"어머니는 내 환상의 도서관이었으며, 최초의 시요
드라마였으며, 끝나지 않은 길고 긴 이야기책이었다"

1963년 8월 12일부터 10월 24일까지 <경향신문>에 연재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하잘것없는 단서에서 우리 문화와 의식의 실체를 찾아낸 이어령교수의 천부적인 관찰력이 돋보이는 글입니다. '이것이 한국이다'라는 부제가 딸린, 에세이의 진수를 보여준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입체적이며 지성적인 한국론이죠.

"울음과 눈물을 빼놓고서는 한국을 말할 수 없다.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주위의 모든 것까지를 '울음'으로 들었다. '운다'는 말부터가 그렇다. 우리는 절로 소리 나는 것이면 무엇이나 다 '운다'로 했다. 'birds sing'이라는 영어도 우리말로 번역하면 '새들이 운다'로 된다. 'sing'은 노래 부른다는 뜻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반대로 '운다'고 표현했던 것이다."
― 이어령, 『흙 속의 저 바람 속에』(현암사, 1963)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1963년 <현암사>에서 단행본으로 나온 뒤 1년 동안 국내에서만 10만 부가 나가고 해외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는 진기록을 세웁니다. 컬럼비아대학교 등에서 동양학 연구 자료로 쓰이기도 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일본 학계에서도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켜 이 책을 읽은 후쿠오카 프로듀서에 의해 「봉선화」라는 다큐멘터리가 제작되며, 타이완에서는 「기사기풍(欺士欺風)」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됩니다. 40만 부가 넘게 팔려나간 이 책의 인세로 이어령은 신당동에 집까지 마련했다고 하죠.

20대 때 이미 문학평론가가 된 이어령 교수는 쓰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되는 제가 존경하는 '언어의 마술사'입니다. 그런 능력과 소질은 이어령 교수가 고백하듯이 어머니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어머니는 전혀 글자를 모르던 어린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갓난아이가 귀가 들리기 시작하면 어머니는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는 유대인의 역사책인 구약성경을 히브리어로 날마다 들려주는 것과 같은 교육 방식이었습니다. 그러한 어머니의 교육이 있었기에 훌륭한 문화평론가가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이어령 교수의 어머니는 아이가 잠들기 전에 늘 아이 머리맡에서 앉아 책을 소리 내어 읽어주었다고 합니다. 특히 아이가 감기에 걸려 신열이 높아지는 그런 때에는 『암굴왕』『무쇠탈』『흑두건』 같은 재미있는 소설책을 읽어 주었습니다.

이어령 교수는 그 시절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겨울에 지붕 위를 지나가는 밤바람 소리를 들으며, 여름에는 장맛비 소리를 들으며, 어머니의 하얀 손과 하얀 책의 세계를 방문했다'고 회상하며, '어머니의 목소리가 담긴 근원적인 그 책 한 권이 나를 따라 다닌다' '그 환상적인 책은 60년 동안에 수천수만 권의 책이 되었고, 그 목소리는 나에게 수십 권의 글을 쓰게 하였다. 어머니는 내 환상의 도서관이었으며, 최초의 시요, 드라마였으며, 끝나지 않은 길고 긴 이야기책이었다.'

잘 모르는 독자 분들을 위해서 소개합니다. 이어령(李御寧, 1934년 1월 15일 ~ )은 대한민국의 전 문화부장관, 대학 교수, 소설가이자 작가 겸 저술가, 사회기관단체인 겸 사회운동가, 정치가, 문학평론가, 시사평론가입니다. 아호(雅號)는 능소(凌宵)입니다. 1956년 서울대학교 국문학 학사와 1960년 서울대학교 국문학 석사, 1987년 단국대학교 국문학 박사 등을 취득하였고, 신문 논설위원과 대학 교수로 활동하였으며, 1990년 1월 3일부터 1991년 12월 19일까지 문화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