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눈물을 뿌리기엔 이르다.

손흥민은 24일(한국시간)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에서 벌어진 러시아월드컵 멕시코와의 F조 조별리그 2차전을 마친 뒤 울면서 팬들에게 인사했다. 방송 인터뷰에서도 울었다. 지난달 출정식에서 “울지 않겠다. 웃음을 선물하겠다”고 했던 이가 바로 손흥민이었다. 그러나 막상 2연패가 현실화되니 감정을 참을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는 “다들 아쉬울 것이다. 내가 눈물 보여선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쉽지 않더라. 국민들에게 죄송하다는 생각이 너무 들었다. 조금 더 했다면 좋은 모습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강팀이 아니니까 찬스를 해결했어야 한다. 팀원으로 미안하다”며 자신이 더 잘했어야 한다고 자책했다.

시계를 2014년 6월23일로 돌려보자.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린 브라질 월드컵 한국-알제리전 후반 5분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한국 공격수가 기성용의 패스를 받은 뒤 상대 수비수 3명을 이리저리 움직여 따돌리더니 상대 골망을 흔들었다. 22살의 대표팀 막내 손흥민이었다. 생애 첫 월드컵 득점이란 기념비적인 순간이었지만 기뻐할 시간이 부족했다. 한국이 전반에만 0-3으로 크게 뒤져 있었기 때문이다. 손흥민은 바로 앞에 있던 한국 응원단을 향해 두 손을 몇 번 치켜드는 것으로 세리머니를 다 했다. 빨리 하프라인으로 넘어가 두 번째 만회골을 넣어야 했다.

그리고 4년하고도 정확히 하루가 더 지난 뒤 멕시코전에 열렸다. 1차전에 이어 한국이 또 영패할 것 같은 불안함이 엄습할 때 멕시코 골문이 흔들렸다. 페널티지역 오른쪽 외곽에서 손흥민이 벼락 같은 왼발 감아차기를 시도했는데 세계적인 골키퍼 기예르모 오초아의 손을 통과한 것이다. 이번에도 세리머니할 시간은 없었다. 후안 카를로스 오소리오 멕시코 감독은 경기 뒤 기자회견에서 이 골을 가리켜 “훌륭하고 멋있었다”고 호평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TV 하이라이트에서도 아름다운 골이라고 했다. 그러나 손흥민은 남은 1초라도 아껴 동점포에 도전해야 했다. 손흥민은 골을 확인한 뒤 재빨리 달려갔다. 볼을 주워 하프라인에 갖다 놓기 위해서였다. 주먹 한 번 불끈 쥔 것이 세리머니의 전부였다.

손흥민은 2010년대 들어 한국 축구가 세계에 자신 있게 내놓고 있는 작품이다. 이번 멕시코전에서도 상대 선수들은 유독 손흥민이 볼을 잡을 경우 차단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전반엔 두 명의 멕시코 수비수가 그의 슛을 육탄 방어했다. 손흥민이 있어 공간이 생겼고 한국에도 상대를 공략할 전술이 생겼다. 그런 마크 속에서도 손흥민은 기어코 좁은 틈을 발견해 멕시코전 득점에 성공하며 상대를 놀라게 했다. 월드컵에서 두 대회 연속 득점한 한국 선수는 유상철(1998·2002년), 안정환(2002·2006년), 박지성(2002·2006·2010년), 그리고 손흥민까지 4명 뿐이다. 하지만 손흥민 처럼 골의 기쁨을 느낄 새도 없이 하프라인으로 뛰어들어가 추가 득점을 준비해야 했던 선수는 없었다. 손흥민이 끝내 눈물을 보인 이유다.

그러나 아직 월드컵은 끝나지 않았다. 실낱 같지만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은 남아있다.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는 독일을 넘어야 하지만 독일이 멕시코, 스웨덴전에서 보여준 모습은 두려워해야할 정도는 아니었다. 수비 뒷공간이 수시로 뚫려 위기에 처하는 장면이 수시로 나왔다. 주전 센터백 제롬 보아텡은 스웨덴전에서 경고누적으로 퇴장 당했고 또 다른 수비의 핵심 마츠 훔멜스는 부상을 당해 재활중이다. 상대적으로 한국보다 느린 스웨덴의 역습에 흔들렸으니 손흥민을 앞세운 한국 공격진에게도 승산이 있다. 신태용호도 얼마든지 ‘이변’을 연출할 수 있고 손흥민이 그 주인공으로 우뚝 설 수 있다.

독일전에서는 선제골을 넣고 마음껏 세리머니하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싶은 것이 모든 국민들의 한결같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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