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그룹 ‘퀸’과 리드 싱어 프레디 머큐리의 파란만장한 스토리를 담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극장가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청소년기에 퀸의 음악을 들으면서 자란 중장년층은 물론 젊은 세대까지 아우르면서 많은 공감을 일으키고 있다. 조현진 국민대 특임교수가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영화속 이야기에 대해서 본지에 특별기고를 보내왔다. 퀸의 전성기때 청소년기를 보낸 조 교수는 YTN 보도국 기자 출신으로 1999~2002년 ‘빌보드’지 한국 특파원을 지내면서 ‘K팝’ 현상을 팝의 본고장에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로큰롤의 뿌리를 탐구한 역저 ‘로큰롤의 유산을 찾아서’를 2015년에 펴내기도 한 ‘로큰롤 키드’이기도 하다. <편집자주>

영국의 4인조 록밴드 퀸을 소재로 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인기가 기대 이상으로 대단하다. 영화로서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지적과 음악의 힘이 살아있다는 상반된 평가 속에서 떼창의 위력은 영화관 밖에서도 들린다. 전설적인 밴드의 탄생, 영속성 있는 음악의 발표 그리고 걸출한 보컬리스트의 드라마틱했던 삶을 담은 ‘보헤미안 랩소디’는 영화 곳곳에 숨어 있는 매력을 발견하도 것도 또 다른 재미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보헤미안 랩소디’의 숨은 장면 10선을 소개한다.

1. 오프닝 팡파레
20세기 폭스사가 제작한 영화들은 시작과 함께 첫 장면을 장식하는 서치라이트 형태의 로고와 팡파레 음악이 너무나도 상징적이다. 필자의 경우는 1978년 국내 개봉한 (미국 개봉 1977년) 영화 스타워즈를 본 이후 머리 한구석 어디엔가 깊숙이 박혀있는 20초 안팎의 팡파레다. ‘보헤미안 랩소디’도 어김없이 이 팡파레와 함께 시작한다. 그런데 파격적이다. 기타로 편곡된 팡파레 버전이다. 퀸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의 편곡을 거친 이 팡파레는 2시간 동안 이어질 로큰롤 여행의 비상을 알리는 서곡이다. 같이 영화 보러 간 퀸의 광팬인 음악인 친구가 이 팡파레를 듣고 영화 시작 3초 만에 흥분한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2. 스마일 밴드와의 조우
영화 속에서 퀸의 전신인 밴드 ‘스마일’은 보컬겸 베이스의 팀 스타펠(Tim Staffell)이 밴드 험피 봉(Humpy Bong)으로 옮기면서 해산 위기를 맞이하다. 개명 전의 프레디 머큐리는 이때 허탈해하는 남은 스마일 맴버들인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에게 다가가 자신을 소개하고 보컬을 맡겠다고 자원한다. 그러나 실제 프레디는 이미 이전부터 스마일을 잘 알고 있었다. 프레디와 팀은 런던 소재 일링 예술대학(Ealing Art College)을 같이 다닌 친구 사이였고 자연스럽게 스마일과 교류하게 됐으며 그들의 음악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일링 예술대학은 록밴드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의 론 우드(Ron Wood)와 더 후(The Who)의 피트 타운센드(Pete Townsend) 등도 배출해 로큰롤과의 인연이 깊다.

3. 그 여자!
프레디 머큐리의 새 집 벽에 걸려있는 흑백 사진이 유독 기억에 남는 팬들 많을 거다. 중요한 사진이다. 그의 집에 걸린 사진 속의 주인공은 독일 여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Marlene Dietrich)다. 프레디는 실제로 그녀를 존경했는데, 흑백 사진 속의 그녀가 손을 놓은 모습은 1974년 발매된 퀸의 2집 <QueenⅡ> 음반 흑백 사진 재킷의 영감이 됐다. 이 음반은 20여년 뒤 신해철이 이끌던 밴드 넥스트의 5.5집 <ReGame?>의 흑백 사진 재킷에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다. 모두가 ‘그 여자’에서 시작됐다.

4. 그 남자!
미국 공연에 나선 퀸이 한 공연을 마친 뒤 프레디 머큐리가 공중전화를 이용해 국제전화로 영국에 있는 여자 친구 메리 오스틴에게 전화해 서로의 안부를 나누던 장면에서다. 트럭이 프레디 앞에 주차하더니 남성미 물씬 풍기는 한 사내가 운전석에서 내린다. 프레디는 순간 이 남자에게 표현하기 힘든 매력을 느낀다. 그의 성 정체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기도 하다. 이 남성미 물씬 풍기는 사내는 놀랍게도 2011년 이후 퀸이 공연에 나서면 프레디가 남긴 빈자리를 채우며 보컬을 맡고 있는 가수 아담 램버트(Adam Lambert)다. 2014년 8월 15일 퀸의 첫 내한공연 때 서울 잠실에서 마이크를 잡았던 바로 ‘그 남자’ 아담 램버트다!

5. EMI 음반사의 레이 포스터
퀸이 야심차게 녹음한 곡 ‘보헤미안 랩소디’를 EMI 음반사의 고위 임원 레이 포스터(Ray Foster)는 냉정하게 무시하고 비참하게 과소평가한다. 그러나 레이 포스터는 영화가 만들어낸 가상인물이다. 관전 포인트는 레이가 가상인물이냐 아니냐보다, 영화속 레이 역을 실제 어느 배우가 맡았느냐이다. 1970년대 풍이 물씬 풍기는 스웨터와 선글래스 뒤에 감춰진 얼굴은 영화 ‘오스틴 파워즈(Austin Powers)’ 시리즈로 잘 알려진 배우 마이크 마이어스(Mike Myers)다. 마이어스가 출연한 1992년 작 영화 ‘웨인스 월드(Wayne’s World)’는 주인공 일행이 차 안에서 록 음악을 큰 소리로 들으며 신나게 머리를 흔드는 장면으로 대표된다. 이 때 이들이 차 안에서 들었던 음악이 다름 아닌 ‘보헤미안 랩소디’ 였다. 영화 덕에 이 곡은 첫 출시 17년 만에 다시 미국 싱글 차트 2위에 올랐는데 이는 프레디가 숨진 직후였다. 영화 속에서 레이 포스터는 ‘보헤미안 랩소디’ 곡을 들으며 “이런 노래를 차 안에서 큰 소리로 들으며 격정적으로 머리를 흔들어 댈 10대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곡에 강렬한 반대 입장을 보인다. 바로 자신이 영화 ‘웨인스 월드’에서 보여주고 유행시킨 장면을 염두에 둔 치밀한 대사였다.

6. 프레디 집에서의 파티
프레디가 집에서 파티를 연다. 집 안에 있던 프레디가 밖으로 나올 때 화면 왼편에 고정 자전거를 타고 있는 반라(半裸) 차림의 여배우들이 살짝 화면을 스쳐간다. 퀸은 1978년 그들의 정규 7집 <Jazz> 음반을 발표하고 여기서 곡 ‘바이시클 레이스(Bicycle Race)’와 ‘팻 보틈드 걸즈(Fat Bottomed Girls)’가 싱글로 출시된다. 이 싱글 음반 자켓은 반라 차림의 여자가 자전거를 타고 있는 사진을 담고 있는데 영화는 바로 이 장면을 재현한 것이다.

7. 에이드 전에 에이즈?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앞두고 리허설에 한창인 퀸. 프레디가 작정하고 멤버들에게 뭔가 얘기하려 한다. 그의 표정에서 중요한 내용임을 직감할 수 있다. ‘나는 에이즈 환자야’하고 밴드에게 알린다. 중요한 공연을 앞두고 밴드의 결속을 다지는데 그의 한 마디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실제 프레디가 병원에서 에이즈 진단을 받은 것은 이로부터 2년 뒤인 1987년의 일이다.

8. 퀸, U2를 만나다?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되는 1985년 7월 13일 라이브 에이드(Live Aid) 공연. 프레디와 멤버들이 계단을 오를 때 오른편에 공연을 마치고 계단을 내려오는 멤버들이 보인다. 세련된 교복 같은 자켓을 걸치며 맨 앞에 서서 내려오는 가수는 다름 아닌 아일랜드 출신의 록밴드 U2의 보컬리스트인 보노(Bono)다. 그 뒤로 더 에지(The Edge) 등 U2 멤버들이 차례로 내려온다. 두 밴드는 특별한 인사없이 그냥 거의 스쳐지나가는 수준이다. 보노의 얼굴은 마냥 즐거워만 보인다. 소년 같은 보노의 얼굴에서 이제 세월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프레디와 보노가 공연 당일 무대 뒤에서 잘 지냈다는 기록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그러나 퀸과 U2가 동시에 계단을 이용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퀸 바로 직전에 라이브 에이드 무대에 오른 아티스트는 U2가 아니고 영국 록밴드 ‘다이어 스트레이츠(Dire Straits)’였기 때문이다. 실제 U2는 라이브 에이드 공연에서 퀸과 함께 최고의 무대를 보여준 아티스트로 늘 언급되곤 한다. 보노라는 스타 파워를 의도적으로 등장시킨 건지 아니면 최고의 무대를 선사한 두 아티스트를 함께 계단에 세운 의도인지 감독을 만난다면 물어볼 일이다.

9. 다이어 스트레이츠
언급한대로 퀸 직전에 라이브 무대에 오른 밴드는 다이어 스트레이츠였다. 실제로 퀸이 무대에 오르기 전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모습이 영화에 비춰질 때 귀를 기울이면 배경 음악으로 그들의 대표곡 ‘설튼스 오브 스윙(Sultans of Swing)’을 들을 수 있다. 참고로 퀸 다음으로는 가수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가 무대에 올랐다.

10. 위 윌 록 유(We Will Rock You)
퀸의 노래를 자주 접한 팬들은 잘 알겠지만 그들의 히트곡 ‘위 아 더 챔피언스(We Are the Champions)’ 직전에는 거의 예외없이 ‘위 윌 록 유(We Will Rock You)’가 나온다. 1977년 발매된 퀸의 정규 6집 <뉴스 오브 더 월드(News of the World)> 음반 A면의 첫 두 곡으로 실려 있다. 독립된 곡들이지만 두 곡 모두 그리 길지 않고 당시 영국 라디오 DJ들이 연속해서 틀면서 이제는 두 곡을 따로 들으면 이상하게 들릴 정도다. 이 ‘We Will Rock You’ 곡이 영화에서는 등장하지 않지만 실제 라이브 에이드 무대에서 퀸은 이 두 곡을 이어서 불렀다. 영화에서 라이브 에이드 장면 이전에 ‘We Will Rock You’ 곡의 탄생 과정이 잘 묘사돼 있어 중복을 피한듯하다. 라이브 에이드 당시 그들이 부른 ‘크레이지 리틀 싱 콜드 러브(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도 영화에서는 제외됐다. 그렇다고 우울할 필요는 없다. 라이브 에이드에 출연한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공연 장면은 상당 부분 유실되고 사라졌다. 그러나 퀸의 라이브 에이드 영상은 신기하게도 잘 보존돼 있고 인터넷 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전세계 퀸 팬들은 프레디를 추모할 만한 최적의 장소를 찾아 나선다. 필자 역시 취재를 위해 런던을 찾았는데 결국 ‘가든 로지(Garden Lodge)’에서 해답을 찾았다. 가든 로지는 런던 켄싱턴(Kensington) 지역에 위치한 맨션 이름으로 프레디가 숨진 1991년까지 실제 살던 집이다. 프레디는 사망 이후 화장됐고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진 장소에 유해가 뿌려졌다. 무덤이나 묘지도 없는 그이기에 가든 로지는 사실상 프레디의 무덤이자 성지 대접을 받으며 이른 아침부터 팬들이 몰려온다. 벽은 늘 추모 편지와 낙서로 빽빽이 덮여 있고 꽃다발도 도처에 흩어져있다. 프레디는 숨지기 전 이 집을 영화에도 나온 메리 오스틴에게 남겼다. 실제 메리는 프레디가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그의 가장 가까운 벗으로 남았다. 무대 위에서는 그 누구보다 화려했던 프레디였지만 그가 실제 살던 집은 낙서나 추모객이 아니었다면 록스타가 살았던 집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할 정도로 조용한 지역에 차분히 자리하고 있다. 오페라틱했던 음악과 드라마틱했던 삶을 살았던 그였기에 그가 살던 집은 더더욱 차분하게 다가온다. 영화의 성공과 함께 이 집은 더 큰 명소로 늘 붐빌 전망이다. 그렇다고 그 차분한 분위기가 하루아침에 달라지지는 않을 듯하다.

조현진(국민대 특임교수·‘로큰롤의 유산을 찾아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