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 생후 2년·1달 만에 길 거리에 버려져 고아원행, 중년 여인 돼서 '눈물의 상봉'

[뉴스포커스]

72년에 미국과 벨기에로 각각 입양 보내져
모른채 살아오다 유전자 정보로 존재 확인

지난 15일 동생 버려졌던 대구역에서 재회
"이젠 친부모 찾고 싶다…원망은 하지않아"

갓난아기 때 해외로 입양돼 미국과 벨기에서 살아온 친자매가 유전자검사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알고 47년만에 대구에서 극적으로 재회했다. 부모를 찾아나선 언니 덕분에 상봉한 이들 자매는 이제 함께 부모 찾기에 나섰다.

"지난달 이메일 한 통을 받았어요. 컴퓨터로 이메일을 열자마자 몸이 떨리고 눈물이 쏟아졌어요. 이메일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 있었죠. 제 여동생을 찾았다는 내용이었어요. 평생 제 가족이 누구일까 궁금했는데…."

▶생후 함께 지낸 시간은 단 3주

지난 18일 오전 대구 북구 대구역 역사에 두 중년 여성이 팔짱을 끼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나타났다. 언뜻 평범한 한국인처럼 보였지만 둘은 영어를 주고받으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미국에서 온 크리스틴 페늘(50)과 벨기에에서 온 킴 헬렌(48)이다.

둘은 자매다. 언니는 1969년, 동생은 71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둘이 함께 지낸 시간은 3주에 불과했다. 언니는 71년 11월 3일 대구 동구 반야월역에 버려졌고, 동생은 태어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71년 12월 3일 대구역 광장에 버려졌다. 각자 자신에게 자매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엔 너무 어렸다.

언니는 고아원인 일심원으로, 동생은 백백합보육원으로 각각 옮겨졌다. 이윽고 둘은 외국인에게 입양돼 72년 9~10월 한 달 간격으로 한국을 떠났다. 그렇게 47년을 서로를 모른 채 살았다.

두 번째 조국에서 결혼도 하고 각자 아이 셋을 낳아 가정을 꾸렸다. 언니 크리스틴은 법률사무소에서, 동생 킴은 특수교육자로 워킹맘 생활을 하고 있다.

친 자매임을 알게 된 것은 유전자검사 덕분이다. 어렴풋이 부모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던 언니는 그 동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유전자 분석에 기반을 둔 혈연 찾기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인 '마이헤리티지'에 자신의 유전자 정보를 등록해 두었다. 동생이 지난해 12월 콩팥 제거 수술에 필요한 유전자 검사를 실시하며 기적이 일어났다. 각 검사기관의 유전자 정보 공유를 통해, 두 사람은 지난달 15일 "100% 일치하는 친자매를 발견했다"는 결과를 전달받았다.

▶너무 닮은 생김새에 깜짝

자매를 찾았다는 소식을 들은 언니 크리스틴은 곧장 스마트폰 영상 통화로 동생에게 연락했다. 둘은 서로 생김새가 닮은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생선을 싫어하는 식성도 닮았고, 춤을 즐겨 추는 취미도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두 자매는 영상 통화를 하며 만남을 손 꼽아오다 지난 15일 저녁 47년전 동생 킴이 버려졌던 장소인 대구역에서 극적으로 상봉했다.

킴은 "대구 역에 내리니 언니가 보였다. 언니는 날 보지 못했다. 나는 가방을 집어 던지고 달려갔다. 언니가 많이 울었다"고 전했다. 대구역을 찾은 자매는 역사에서 진행 중인 대구의 옛 모습 사진 전시회를 감상하고, 주변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함께 춤을 추기도 했다.

동생 킴은 22일 벨기에로 돌아간다. 언니는 한국에 더 체류하다 귀국할 예정이다. 미국과 벨기에의 가족들도 너무 기뻐한다는 두 자매는 "서로의 가족을 만나보고, 함께 식사와 쇼핑 등 하고 싶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며 기쁨을 참지 못했다.

자매는 앞으로 한국에 친부모를 찾아 나설 계획이다. 해외 입양인을 돕는 한국과 미국 여성들의 모임 '배냇' 관계자는 "70년대 한국에선 생계가 어렵다는 이유로 자녀를 버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현재 이들의 부모가 살아있을 확률도 높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크리스틴은 "부모님이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린 한 번도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부모님을 만나서 보살펴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