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한 국적법·의료행정에…美 시민권 취득 재외국민 교묘한 '건보 먹튀' 여전
[뉴스진단]

한국내 단기체류하며 건보 진료 후 줄행랑
국적 상실 신고 안하면 내국인과 동일 적용
최근 6년간 건보증 대여·도용 29만건 적발

최근 대표적인 미주 한인 여성 커뮤니티에 '한국 건강보험 먹튀 꼼수 팁' 게시글이 올라와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시민권을 취득한 재외동포가 한국에 단기 체류하며 건강보험 진료를 받고 출국해버리는 이른바 '건강보험 먹튀'가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 정부가 지난해 6개월 이상 한국에 체류해야 외국인과 재외국민이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관련 법령을 개정했지만, 국적법의 허점과 건강보험증 본인 확인을 하지 않는 허술한 의료행정 시스템을 악용한 건강보험 무임 승차까진 여전히 막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미주 한인 여성 커뮤니티인 '미씨USA'에 한 게시자는 '미국 시민권을 따고 국적상실 신고를 하지 않으면 입국 다음날부터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한국 건강보험 '꼼수 팁' 게시물을 올려 화제가 되면서 다른 회원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같은 꼼수 공개에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지난 17일 "내국인이었던 사람이 외국 국적을 취득하고 국적상실 신고를 하지 않으면 서류상 한국 국적이 그대로 살아 있어 내국인과 똑같은 규정을 적용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국적법에 따라 한국인이 외국 국적을 취득하면 그때부터 '외국인'이 된다. 다만 국적상실 신고를 할 때까진 한국 국적이 그대로 남는다.

법무부 관계자도 "해당 국가에서 우리나라에 그 사실을 통보해주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본인이 국적상실 신고를 하지 않으면 처리되지 않는 사례가 있다"고 전했다.

국적상실 신고가 바로 이뤄진다면 외국인의 건강보험 부당 이용도 막을 수 있지만, 정당한 사유 없이 1개월 내에 신고를 하지 않으면 5만원 이하 과태료만 부과하고 있어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한국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한인 가운데 출국할 때는 미국 여권을, 입국할 때는 한국 여권을 사용하다가 적발되는 일도 종종 있다. 적발되면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굳이 이런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 한국내 친인척의 건강보험증을 도용하는 이들도 아직 여전히 많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최근 6년간(2013~2018년) 외국인을 포함한 6585명이 건강보험증을 도용하다 적발됐다. 적발 건수는 이보다 훨씬 많은 29만4722건이다. 한 사람이 수차례 건강보험증을 도용했다는 얘기다. 이런 식으로 71억 5100만원의 건보재정이 빠져나갔고, 이 중 46.8%인 33억4600만원밖에 회수하지 못했다.

건강보험공단은 건강보험증을 대여하거나 도용하는 부정 사용을 막고자 '전자건강보험증' 도입을 추진했으나 개인정보 유출을 우려하는 시민단체 반대에 부딪혀 더는 추진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