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나이에 LA서 역이민 한국 정착해 사는 괴짜 노인 빈센트 리 …범상치 않은'쓸모학 개론'

특별대담

"모든 '쓸모'는 오랜 삶의 습관에서 나오지
돈과 재산 중요하지만 가장 값진 건 '경험'
준비 안 된 사람은 기회가 와도 잡지 못해"

괴짜가 나타났다. 자신을 '가회동 집사'라고 소개한 사람. 매일 아침 빵을 구우며 자신의 쓸모를 만들고, 집안 구석구석을 고치며 하루를 보내는 유쾌한 할아버지. 모습부터 범상치 않았다. "난 오늘 크리스마스 트리야. 선물이지. 일부러 맞춰 입었어"라며 해맑게 웃는 이 사람은 빈센트 리(67)다.

그는 최근 SBS 스페셜 '가회동 집사 빈센트의 쓸모 있게 나이 들기'에 출연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방송에선 빈센트의 하루 일과는 물론 직접 설계하고 만든 공간을 공개해 눈길을 모았다. 전문가 못지 않은 인테리어 솜씨는 물론 정리·정돈의 기술 그리고 건강하게 나이듦에 대해 손수 보여주고 설명했다. 직접 모든 것을 해내는 빈센트는 남의 손을 빌리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돈을 버는 이들을 위한 라이프 스타일에 혁신을 준 셈이다. 방송 직후 많은 이들이 빈센트라는 사람에 대해 궁금증을 갖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그가 살고있는 가회동 집에 손님들이 찾아와 인생 그리고 삶에 대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TV 속에서 본 그 공간에서 빈센트를 직접 만나 어른들의 쓸모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시작만 하면 기술된다"

빈센트가 세상 밖에 소개된 것은 한 권의 책으로부터 시작됐다. '쓸모인류-어른의 쓸모에 대해 묻다(몽스북)에는 빈센트의 이야기가 있다. 대기업을 다니고 사업을 하던 남자가 늦은 나이 한국에 정착해 살고있는 현재의 이야기를 모두 담았다.

'쓸모인류'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다.

"난 이 집을 2년 가까이 고치고 있어. 내가 즐겁게 고생한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지. 쓸고 닦고, 고치는 작업. 나의 그런 깐깐한 성질(?)을 나누고 싶었어. 꼭 그것이 인테리어에만 한정되지는 않아. 아름다운 생활, 뷰티풀 라이프 스타일이 무엇인지 간접적으로 알려주고 싶었거든.

쓸모에 대해 고민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다니던 회사와 소송을 하고 여러 일을 겪으면서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을 손수 만들다 보니 자신감이 쌓이게 됐다고 한다. 누구도 뺏어갈 수 없는, 해고나 퇴직이 있을 수 없는 자신만의 능력과 지식이 '변하지 않는 쓸모'를 만든다고 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법칙이 있다. 무엇을 하든 시작이 쉽지는 않다. 어떠한 것을 잘 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시작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그게 몸에 배어 자신의 삶의 기술로 변한다는 점이다.

▶"하려는 마음가짐이 중요"

그는 이에 대해 "세상의 모든 쓸모는 결국 오래된 삶의 습관에서 나온다"며 "어떠한 일을 하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어쩌면 사람들이 그에 대해 가장 궁금해 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돈에 대한 것이다. '과연 저 사람은 어떻게 돈을 벌을까?' 집의 규모나 살림살이를 보고 '원래 부자였기 때문에 지금 저렇게 살고있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때 옆에 있던 빈센트의 아내가 한 마디 거들었다.

"다들 우리가 노후자금이 많을 거라 생각해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지금 이 집에 있는 예쁜 그릇과 소품들은 다 오랜시간 동안 하나 하나 모은 것이에요. 우리의 추억이 있고, 물건에 대한 쓸모를 만들면서 자리를 잡게 됐죠. 우린 현재에 충실한 것이고, 미래를 위해 투자(물건을 닦고 만들고, 쓸모를 만드는 일)를 하는 것이죠."

▶"용감성과 실패성에 투자하라"

아내의 말이 끝나자 마자 무섭게 그의 말이 이어졌다.

"돈과 재산은 굉장히 중요하지. 어느 시대에 있어서는 돈이 아닌 재산이 더 값어치가 있어.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게 경험이라고 생각해. 죽기 전에 그때 그때 하고 싶은 걸 다 했다고 가정해 봐. 그런데 갑자기 한달 후에 전쟁이 나서 죽었어. 이건 굉장히 비약이 심하지만(웃음), 난 행복 할거야. 왜냐하면 해보고 싶은 일을 다 해왔거든."

어쩌면 모든 것을 다 경험했기에 가능한 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빈센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삶의 연륜이 담겨있었다. 그 역시 돈을 벌기위해 노력을 해봤고, 성공과 실패를 맛봤다.

하지만, 정작 이 과정에서 자신의 것이 아니라면 결국 다 소멸되기 마련이다.

그는 "돈을 벌어서 나의 용감성과 실패성에투자해야한다"면서 "모든 것은 준비된 사람한테 온다. 어떠한 것을 갖고싶다거나 이루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 할 게 아니라 그것을 갖기위해 하나 둘 씩 준비하고 실천하는 게 중요한 것이다. 계속 삶에 대해 불만만 터트리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행운이 와도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대담=본지 남혜연 연예부장

"행복은 천천히, 느리게 온다"

☞1면 '빈센트 리'서 계속

"우리 사회는 너무 '빨리, 빨리'병들었어
아무 노력 준비 없이 성공하려 하다 좌절"


"자동차를 20년 동안 탈 수 있다면 그동안 튼튼하고 멋있게 주인이 갈고 닦아서 가능한게 아닐까. 그래서 건강도 마찬가지인거야. 난 요즘 배를 운전하는 기술을 배우려고 준비하고 있어. 사실 지금 당장 배를 살 수 없지만, 기술을 배워둔다면 언젠가는 이것을 쓸모 있게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어떻게 써질지 몰라."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배우고, 오래살기 위한 습관을 들이며 빈센트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중 자주 하는 것 중에 하나는 요가다. 근력이 필요한 고난도 아시탕가 요가를 하루 30~40분씩 거르지 않으려고 한다.
"운동은 내 삶이 훌륭한 건강 보험이야. 잔병에 쉽게 걸리지 않게 하고,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삶을 보장하는 것이니까. 이것 역시 습관으로 시작되는 거야. 긍정적인 태도도 필요하지."
그는 '당신은 행복하십니까?'라는 물음에 "행복이라는 단어보다는 그냥 천천히, 느리게 걸으며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대답을 대신했다.
"우리 사회는 지금 너무 '빨리, 빨리'병에 들어있는 것 같아. 그래서 아무런 노력의 시간 없이, 준비 없이 빨리 성공하고 싶어하지. 그래서 안되면 좌절하고. 난 이걸 조금 늦추라고 말하고 싶어."
결국에 그가 말하는 것은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실천해 나가는지에 모든 것이 담겨있었다. 타인과 비교를 하며 서둘러 좌절하지 않고, 자신과 자신이 갖고있는 것의 쓸모를 위해 조금씩 노력을 한다. 그래서 빈센트는 자신이 살고 있는 가회동 한옥을 지난 2년 여간 조금씩 고쳐나가며 더욱 쓸모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이러한 정신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려는 것이 아닐까.
"사회가 좀 더 안정되고 발전하려면, 배려와 존중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보다 앞서 천천히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변화시키는게 중요하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준비를 안한 사람은 기회가 와도 지나가게 되는 법이야. 오늘 하루 당신이 얼마나 가치있는 사람인지, 쓸모있는 사람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어."


하와이 출생→ LA 은퇴→한국행

▣빈센트 리는

한 권의 책 '쓸모인류~'로 스타덤
TVdp '가회동 집사~' 출연해 화제

빈센트는 1952년 서울 출생, 한국인 어머니와 중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하와이에서 성장한 동양계 미국인이다.

사업을 하던 부모를 따라 홍콩과 미국, 한국을 오가는 학창 시절을 보냈으며, 코넬 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뱅크오브아메리카, 휴즈항공 등에서 일했다.

평범한(?) 사회생활을 하던 어느날, 그의 인생을 바꾸게 된 사건이 생겼다. 특히 휴즈항공 근무 시절에 직장 동료가 사내에서 인종 차별을 당하자 회사에 문제 제기를 하지만, 오히려 혼자 조직적 불이익을 당한다. 이후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하게 되고 수년 간 이어진 싸움끝에 승소, 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 사건은 1980년대 당시 미국 유력 일간지의 일면을 장식할 정도로 유명한 사건었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자신은 조직인으로서의 삶이 맞지 않음을 깨닫고 40대 중반에 개인 사업을 시작한다. LA에서 에너지 관련 사업체를 운영하다 지난해 은퇴, 한국에 들어와 서울 가회동 한옥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아내는 한국인이다. 부부는 미국에서 오래 생활을 했고, 은퇴후 삶을 한국에서 보내고 싶어 서울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 나이로 예순 일곱, 은퇴는 했지만 'Just do it'을 실천하며 매일 제 삶의 쓸모를 찾아 움직이는 사람, 이것이 빈센트 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