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회담 '물밑준비' 공식화…대화무드 띄우며 "평화프로세스 다음 단계로"
'검증 하 영변 완전폐기-부분 제재완화' 교환카드 구체화…중간목표 '길잡이'
"실무협상 응해야" 北에 '바텀업' 병행 촉구…'경협→공동번영' 청사진 강조

(서울=연합뉴스) 이상헌 임형섭 박경준 기자 = 한반도에 다시금 '외교의 계절'이 돌아오고 있다.

북미 대화의 '촉진자' 역할을 맡아온 문재인 대통령은 26일 연합뉴스 및 세계 6대 통신사와의 합동 서면인터뷰에서 "북미 간에는 3차 정상회담에 관한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한동안 멈춰선 것으로 보였던 북미간 '톱 다운' 외교가 다시 본궤도에 올라섰음을 공개적으로 확인시켜준 것이다.

주목할 대목은 이번에 성사될 것으로 보이는 북미 3차정상회담이 하노이 회담 이후 물밑에서 진행된 실무협상의 '성과'를 토대로 이뤄지고 있는 점이다. 정상간 '케미'에 의존해 구체적 결과물을 도출하는데 한계를 보였던 1, 2차 정상회담과 달리 실질적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게 문 대통령의 인식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을 통해 서로의 입장에 대한 이해가 선행된 상태의 물밑대화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하노이 회담에서 논의된 내용이 다음 단계 협상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의미있는 대목은 문 대통령이 북미간 비핵화 협상 타결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촉진자'로서 전면에 나선 점이다.

문 대통령은 이번 인터뷰에서 '영변 핵시설 전부의 검증 하 완전 폐기'와 '제재의 부분·단계적 완화' 맞교환 카드를 제시했다.

북미 정상의 친서 교환 등을 곁에서 지켜본 문 대통령이 한층 진전된 협상카드를 거론하며 '길잡이' 역할을 자처함으로써 북미간의 핵(核) 담판이 한층 속도감있게 진행될 지 주목된다.

북미간 비핵화 협상을 넘어 남북관계까지 아우르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새로운 활력을 찾을 가능성도 있다.

문 대통령은 "평화 프로세스는 북미협상의 재개를 통해 다음 단계로 나가게 될 것"이라며 "이제 그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 文대통령, 북미 간 '물밑대화' 공식화…"하노이 회담, 실패 아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답변에서 "(북미) 양국 간에는 3차 정상회담에 대한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명시했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은 그동안 '관측' 수준에 머물렀던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물밑 대화'의 존재를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북미간 비핵화 협상이 교착국면에서 벗어나 새로운 차원으로 진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이에 이뤄진 친서교환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는 등 양국의 소통을 가까이서 지켜봤다는 점도 이런 해석에 힘을 싣는다.

한반도문제의 당사자이자 북미 핵협상의 '촉진자'로서 논의의 흐름을 긴밀히 살핀 결과, 협상 재개를 공식화할 시기가 됐다는 판단 아래 적극적으로 대화분위기 띄우기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최근 북미 양국에서는 양 정상의 친서 교환을 비롯, 교착에서 벗어날 조짐이 조금씩 흘러나오며 대화 재개에 대해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아울러 그동안 '결렬' 내지 '실패'로 규정됐던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문 대통령의 이번 발언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북미 양국의 물밑 대화를 두고 "하노이 회담을 통해 서로의 입장에 대한 이해가 선행된 상태에서의 대화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노이 회담을 교훈으로 삼아 양국이 보다 정교한 물밑준비를 거쳤으며, 이는 3차 핵 담판 성공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상황인식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우선 문 대통령이 북미 양국을 향해 '맞교환 카드'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점이 눈길을 끈다.

문 대통령은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 시설을 포함한 영변의 핵시설 전부 검증 하에 전면적으로 완전히 폐기된다면 북한 비핵화는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든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북미회담과 비핵화 과정에 실질적 진전이 있으면 개성공단 재개 등 남북 경제협력도 탄력을 받을 것이며, 국제사회도 유엔 안보리 제재의 부분적 혹은 단계적 완화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며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이전에도 '영변 핵시설의 완전한 폐기'를 얘기하긴 했지만, 이번엔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포함한 핵시설 전부', '검증 하' 등의 단서를 달며 목표 지점을 한층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이는 하노이 회담 당시 북미 양측이 '비핵화' 개념에 대해 명확한 의견일치를 보지 못해 '하노이 노딜' 사태가 빚어졌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나아가 구체적이고 명확한 교환카드가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을 경우 이를 징검다리 삼아 북미 양측의 협상도 원활하게 흘러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도 엿보인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이 협상 중간지점을 언급한 것 자체가 북미 간 협상이 상당한 수준으로 진척됐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와 관련, 문 대통령이 앞서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 내용을 전해 듣고서 "아주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고 언급한 점과 연결짓는 시각도 있다.

문 대통령이 친서 내용을 보고 북미가 비핵화 방법론과 관련해 일부 접점을 찾았으며, 곧 대화가 재개될 것임을 감지하고 공개적으로 '촉진 행보'에 나선 것 아니냐는 얘기다.

문 대통령이 북한을 향해 "미국의 실무협상 제의에 응하는 것 자체도 비핵화 의지를 보여주는 일"이라며 실무협상에 나설 것을 촉구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동안의 비핵화 논의는 정상 간 직접소통에 기반한 '톱다운(top down)' 방식으로 이뤄졌다면, 이제는 '바텀업'(bottom up·실무자간 논의를 거쳐 정상이 최종 합의하는 방식) 협상도 병행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실무협상은 북한의 대화의지를 국제사회에 각인시키는 효과는 물론, 북미 간 더욱 정교한 협상을 가능하게 해 '하노이 노딜'의 재연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판단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5일 북유럽 순방 도중 한·스웨덴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북미 간의 구체적인 협상 진전을 위해서는 (북미 정상회담) 사전에 실무협상이 먼저 열릴 필요가 있다"며 "그래야 하노이 2차 정상회담처럼 합의하지 못한 채 헤어지는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는 미국이 북한을 향해 실무협상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과도 맥을 같이한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는 지난 19일(현지시간)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이 동아시아재단과 개최한 전략대화 행사에서 "우리는 이 문제를 푸는 데 실패했던 지난 25년간의 공식을 뛰어넘어야 한다"며 "(실무협상에서의 비핵화 이슈 논의가) 단언컨대 성공으로 가는 길"이라고 언급했다.

문 대통령이 이날 실무협상의 필요성을 강조한 만큼, 27∼30일로 예정된 비건 특별대표의 방한을 계기로 북측에서 실무협상에 대한 반응을 내놓을지에도 시선이 쏠린다.

문 대통령은 이번 답변에서 한반도의 비핵화가 단순한 남북의 문제가 아닌, 동아시아의 공동번영으로 이어지리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경제교류의 활성화는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견인하는 새로운 협력질서 창출에 이바지할 것"이라며 "경제협력을 위해서는 국제 경제 제재가 해제돼야 하고, 그러려면 북한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비핵화 실질 조치→국제사회 제재 해제·남북 경제협력 활성화→동북아 공동번영'으로 이어지는 큰 틀의 청사진을 내보인 셈이다.

이는 북한에 '밝은 미래'를 선제적으로 제시해 비핵화를 추진할 동력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동북아 등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고히 하기 위한 포석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는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냉전체제를 허무는 세계사적 대전환"이라고 규정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구상하는 '새로운 100년을 여는 신한반도 체제' 실현을 위해서라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진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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