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들면 찾아오는 '흰머리'…특별난 한국 사람들의 고정관념

[생각뉴스]

"염색 좀 하지. 할머니 되겠어"에 중년 여성들 발끈
"돈 들고 시간 빼앗기지만 그대로 놔둘 순없는 노릇"
배우 조지 클루니와 베토벤의 섹시한 흰머리에 허탈
"한인 男 염색 잘 안해"…자연스런 늙음 받아들여야

LA에 거주하는 김모씨(60)는 남편과 1살 차이다. 흰머리가 나는 속도는 똑같은데 김씨에 비해 남편은 흰머리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어 보인다. 미용실에 같이 가자고 해도 남편은 "난 그냥 좀 자라게 둘게. 당신만 염색해."라고 답한다. 이상하게 남편의 흰머리는 어색하지가 않다.

염색하지 않는 흰머리는 전 세계 중년 여성들의 관심사다. 사진 공유 SNS '인스타그램'검색창에 염색하지 않고 흰머리를 유지한다는 단어인 '고잉 그레이(#goinggray)'를 치면 24만 개가 넘는 사진이 뜬다. 대부분 여성들의 흰머리 사진이다. 인종과 국경을 뛰어넘어 많은 이들이 '좋아요'를 누르며 공감했다.

늙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흰머리를 관리하려면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한다. 선택은 결국 본인이 해야한다. 그런데 유독 한국인들은 흰머리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하다. 어째서 남자가 흰머리가 있으면 중후해 보이고 여자는 늙어 보인다고 하는걸까.

한국 여성에게 흰머리 염색은 삼시세끼 밥을 먹는것과 같은 맥락이다. 때가 되면 꼭 염색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어머 얘, 너 흰머리 많이 올라왔다. 염색할 때 됐네."

한달에 한두번 친구들을 만나는 여성 최모씨(57)의 경우에는 이런 대화가 익숙하다. 중년 여성에게 흰머리가 올라오면 염색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기에 조금이라도 흰머리가 보이면 보기 흉하다고 서로 '지적질'이다.

직장인 여성 이모씨(53)는 얼마전 회사에서 상사가 "염색좀 하지? 이러다 할머니 되겠어" 라는 말에 기분이 상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민망함에 주변을 둘러보니 흰머리가 자글자글한 남성직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왜 사람들은 유독 흰머리가 난 여성에겐 자비가 없는걸까. 그는 "늙어 보일까봐 흰머리를 그냥 둔다는 건 상상도 해본적 없다. 사회적인 지위가 있고 관리가 잘 된 노인이 아니고야 초라해 보이지 않을까. 70이 넘은 교회 권사는 어울릴지 몰라도 내가 한다고 생각하면 엄두가 안난다"고 씁쓸함을 내비쳤다.

LA 힐스뷰티 미용실의 레이첼 실장은 "흰머리가 나는 중년 여성 손님의 100%가 염색을 하지만 남성 손님 중에선 염색 안하는 분들이 꽤 많다"고 말했다. 특히 은퇴를 하고 집에 있는 경우 더이상 염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달에 한번 미용실에 들어가는 돈과 염색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투자하는 여성, 염색비용을 아끼려 3주에 한번 집에서 셀프 염색을 하고 너저분해진 화장실을 치우는 여성의 모습은 중년 여성 사이에서 전혀 어색한 그림이 아니다.

한국사람들은 아직 자신이 늙어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된 탓일까. 주변의 시선이 두려운 것도 마찬가지다. 유명 배우 조지클루니와 음악의 신 베토벤의 흰머리는 섹시해 보이는데 왜 한국사람의 흰머리는 늙고 초라해 보이는 걸까.

유전으로 10대,20대 때 부터 흰머리가 나는 여성들이 있다. 20~40대의 여성들은 돈 아깝다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투덜거리지만 아직까지 염색을 멈춘 사람은 없다.

한국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백발이 화제가 됐다. 여성 흰머리의 고정관념을 깬 첫 사례라고 볼 수있을 정도다.

사람은 누구나 다 노화한다. 그러나 20~40대 여자에게 흰머리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것을 부정하는 것일까. 늙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이해하지만 결국 사회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우리들의 흰머리 선택도 더 자유로워 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