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00이란 숫자에서 반 이상을 살았다. 한국에서 36년, 미국에서 17년. 미국에 온 이후 계속 새로운 것만 시도했다. 새로운 것이 좋아서 시도한 것이 아니라 단지 돈을 잘 벌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다 배우고 나면 그 일을 하지 못했다. 남들이 좋다고 해서 배운 건데 적성이 맞지 않았다. 아니, 적성 탓을 했다. 배가 덜 고팠다. 하지 못하게 되면 저절로 하지 않게 된다. 포기.

그리고 또 새로운 것을 찾는다. 그것 역시 아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것을 조금씩 조금씩 많이도 배웠다. 아들이 그랬다. “Again?” 그러면서 지금까지 배운 것을 사용하라고 했다. 다른 걸 또 배우지 말고. 나는 아들에게 “지금까지 배운 거 나한테 안 맞아”라고 말한 후 학비를 기어이 내고야 만다. 아들과 의논하기 전에 새로운 것을 또 배우기로 이미 마음의 결정을 하고, 아들에게서는 위로 또는 응원을 받기 위하여 ‘의논’하는 척했다.

뭔가를 배울 때 공짜로 배우지 못한다. 학비가 있다. 나는 학비만을 계속 냈다. 그리고 1달러는커녕 학비도 건져내지 못했다.그러는 사이 시간이 훌쩍 지났다. 정착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인생을 마무리해야 하는 시간도 가까워졌다. 내일일지… 그 내일이 언제가 될지… 나는 과연 (돈을 버는) 정착을 할 수 있을까? 정착하는 삶은 무엇일까? 더 이상 도서관이나 스타벅스에 가서 공부하지 않고, 남들처럼 9시 출근 5시 퇴근하고, 남들이 잠자는 시간에 나도 자고, 남들이 쉬는 주말에 나도 쉬고… 정착이 무엇이든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서 정착할 시간이 제대로 있을지, 갈 때가 너무나 가까워졌다… 때가 되면 가야지.

그러나 갈 때가 되기 전에 또다시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로 했다. 돈 버는 것 아니다. 다행히 학비는 들지 않는다. 대신 비용이 든다. 이것 역시 마무리가 잘 될 수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2017년 4월 1일부터 남친과 함께 캠핑카(RV) 타고 미 대륙 횡단 여행을 할 예정이다. 서부 로스 엔젤레스에서 시작하여 남부, 동부, 북부, 서부를 잇는 빅 루프(Big loop), 커다란 원을 그리며 여행한다. 우리 고양이, 토마스도 함께!

아침마다 나를 깨우는 우리 집 고양이, 토마스.

함께한 지 5년. 배고플 때만 나에게 온다. 밥을 빨리 주지 않으면 밥그릇과 물그릇을 발로 차면서 신경질을 낸다. 옆집 고양이나 남친이 키웠던 고양이와 비교하면 토마스는 잘 놀라고, 잘 도망가고, 무서워하고… 사교성이 떨어진다기보다는 겁이 많다. 새로운 것을 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집 안에서만 산다. 밖에 넓은 언덕이 있는데도. 아무도 가지 않는 언덕 너머에는 코요테가 떼를 지어 살고 있다. 우리 양이 헤칠까 봐 내가 무서워서 밖에 내보내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 함께 캠핑카 여행을 떠난다. 남친이 처음에는 반대했다. 작은 캠핑카에 냄새 난다, 다른 곳으로 입양 보내라, 동물보호소에 보내라. 아니 그런 험한 말을 하다니…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여러 가지 정보를 찾았다. ‘고양이와 여행’, ‘고양이와 RV 여행’… 서치를 클릭하자마자 고양이와 여행하는 방법과 경험담이 쏟아져 나왔다. 남친에게 얘기했다. “고양이하고 여행하는 사람들 많더라.” 그러자 남친은 “OK.” 하는 수 없이 맘이 바뀌었다. 그러면서도 “너 후회할거야.”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