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에게 엄마 같은 시어머니 없고, 시어머니에게 딸 같은 며느리 없다"

[뉴스포커스]

1세 시어머니 vs 2세 며느리 언어·문화적 차이
70~80년대 한국 사고 방식-미국식 가치관 충돌

"이해 외엔 뾰족한 해결책 없어…남편 역할 중요"
추수감사절·연말연시 등 명절때 언행 조심해야

▣ 시어머니 "섭섭해요"

#정모씨(60·라크라센타)는 요즘 미국에서 태어난 2세 며느리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 얼마전 딸을 낳은 며느리에게 아들을 하나 더 낳아보는것이 어떻겠냐고 한마디 한 것이 화근이었다. 며느리는 "아기는 하나로 족하다. 더이상은 낳기 싫다"고 정색하며 거절해 시어머니를 당황하게 했다. 정씨는 "말이라도 생각 해 보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단호하게 얘기해 놀랐다"고 말했다. 정씨는 "그뿐만 아니라 매사에 사고방식이 미국식"이라며 "가끔 혼내주고 싶을 때가 있지만 아들을 생각해서 참고 며느리 비위를 맞추고 산다"고 토로했다.
#LA 한인타운에 사는 김모씨(59)는 샌디에고에 사는 아들과 며느리가 가끔 시부모를 보러 집에 들를 때마다 섭섭하다. 거리가 멀어 1년에 서너번 만나는데 며느리는 올 때마다 빈 손이다. 마켓에 들러 사과 한 박스나 추울 때 입으라고 내복이라도 한벌 사올만도 한데 말이다. 김씨는 "영어권 가정에서 자라서 그런지 말도 잘 안통하지만 속깊은 얘기를 나눌 수가 없다"며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며느리와 대화하는 횟수가 줄 수 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 며느리 "짜증나요"

#직장생활을 하는 린다 김씨(28)는 한국에 사는 시어머니가 1년에 한번씩 미국에 와서 3개월쯤 아들 집에서 지내다 갈때마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이를 봐준다면서 어린 손주에게 짜고 매운음식을 스스럼없이 먹이거나, 말을 잘 안듣는다고 야단을 치는 등의 모습을 보면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무조건 '우리 아들이 최고'라는 식으로 며느리를 무시하는 듯한 시어머니 때문에 견디기가 어렵다.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이민온 최모씨(27·LA)는 결혼 전까지 줄곧 혼자 살아온 생활에 익숙하다. 남편도 이같은 생활 문화에 대해 서로 존중하기로 결혼하면서 약속했다. 그러나 같이 살기로 한 시어머니 때문에 이같은 최씨의 바람은 처음부터 어그러졌다. 한번은 김치냉장고를 마음대로 치우고 자신이 시장봐 온 음식을 잔뜩 채워놓는 시어머니에게 한마디 했다. "어머니, 김치냉장고는 제가 정리할게요. 가능하면 제가 알아서 하게 해주세요" 그 말에 시어머니는 "시애미는 김치냉장고 하나 마음대로 못쓰냐? 미국에서 자랐다고 너무 버릇이 없다"며 벌컥화를 내고 며느리가 사죄할때까지 며칠동안 말문을 닫았다. 최씨는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해 달라는 뜻이었는데 의사소통마저 제대로 안돼 여간 불편하지 않다"고 고개를 저었다.

▶ 미국인 같은 한인 며느리

결혼은 사랑하는 남녀 두사람의 만남이기 이전에 두 집안의 결합이다. 신랑 신부 조차 결혼생활이 쉽지 않은데 다른 환경과 교육방식 아래 살아온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서로 맞춰 살기가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1세 시어머니와 2세 며느리의 경우는 언어 소통과 문화 차이 등으로 인해 더더욱 쉽지않은 관계다.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어가 서툰 강모씨(32·패서디나)는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시어머니의 말을 이해하기가 힘들다. 유창한 한국말도 잘 알아듣기 힘든데 심한 사투리는 언감생심이다. 미국 직장에 다니는 며느리가 다시 한국 말을 배우기도 쉽지않고…결국 시어머니는 말을 걸어도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 며느리에게 서운하고 불편함을 느끼게 되고 둘의 대화는 서서히 단절됐다.
얼마전에 외동아들을 장가 보낸 김모씨(62·세리토스)는 명절때마다 시부모 집을 찾아오는 며느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일찌감치 시부모 집에 와서 함께 음식을 만들며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시머어니의 바람과는 달리 아들 내외는 항상 밥상을 다 차려놓은 뒤에 나타나서는 밥만 먹고 후다닥 가버리기 일쑤다. 아들은 "엄마, 미국서 자란 여자들은 거의 다 비슷해. 엄마가 이해해줘"라고 다독이지만 미국인 같은 한인 며느리가 마음에 찰 리가 없다.

▶ 한국식 못 바꾸는 시어머니

한인 가정 상담소의 제인 박 상담사는 "갈등의 이유가 좀 차이가 있을 뿐 LA 한인 사회라고 고부 갈등이 한국과 특별히 다른 것은 없다"고 말했다. 박 상담사는 "70~80년도에 이민 온 한국 1세대 시어머니들의 생각이 그 시대에 멈춰있는 것이 갈등의 원인이 되기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1세 시어머니의 문화적 배경 등을 이해하기 보단 미국식을 고집하고 시어머니의 한국적 사고 방식을 무시하는 2세 며느리들의 태도 역시 고부 사이를 갈라놓기 십상"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가정문제 전문가는 "며느리에게 친엄마 같은 시어머니는 없고, 시어머니에게 딸 같은 며느리는 없다"며 "교과서 같은 얘기지만 고부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서 남편의 중간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서나 미국서나 고부 갈등은 명절 때 폭발하기 쉽다"고 말하고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등 연말연시를 맞아 서로 부딪히지 않게 언행에 주의를 기울여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