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권선미 기자 = "다들 설날에 시댁에서 자고 오시나요? 올해는 2박 3일 확정이네요. 이게 말이 되나 싶어요. 시댁에서 자면 불편한데 신랑은 속 편한 소리만 하네요."

회원이 수백만명에 이르는 한 맘카페에 설연휴를 앞두고 올라온 글이다.

점차 성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 분위기에서도 '명절 고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느끼는 며느리들이 많다. 명절 문화가 여전히 남성 중심이어서 며느리들은 친정보다 시가(시댁)를 먼저 챙겨야 하고, 임신이나 육아 중에도 시가에서 일손 노릇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24일 전국 각지의 맘카페에는 "시어머니가 설날 점심·저녁을 같이 먹자고 하십니다", "임신 6개월차인데 설날에 시댁 가면 일을 해야 할까요", "설 연휴에 시댁 식구들과 여행을 갑니다" 등 설 연휴를 앞두고 하소연하는 글이 여럿 올라와 있다.

한 여성은 "임신 22주차라 배가 많이 나와 허리·골반 통증이 심한데 회사도 다녀 제대로 쉬지 못한다"며 "명절 전날부터 시댁에 가서 음식 준비를 못 할 것 같아 남편이 시부모님께 '이번 명절에는 혼자 다녀오겠다'고 말했다가 크게 혼이 났다. 임신한 며느리를 이해해주지 않는 시댁이 너무 싫다"고 썼다.

갓난아이와 3세 유아를 키운다는 윤모(32)씨는 "명절에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3살 아이와 울어대는 갓난아이를 돌보는 동시에 시댁 어른들 눈치를 보고, 계속해서 음식을 만들고 치우는 일을 반복하면서 '나는 언제 가족들 보러 가서 쉬나'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남성 위주의 명절 문화에 반발해 "이번 명절부터는 내 마음 가는 대로 하겠다"고 나서는 며느리들도 있다.

결혼 3년차라는 한 20대 여성은 맘카페 글에서 "두 돌 된 아들과 100일 된 아들을 키우는데 시댁 어른들로부터 '당연히 남편 집에 먼저 와야 하는 것 아니냐', '명절에 친정 가지 마라'는 말을 들으면서 혼자 압박감과 의무감에 스트레스를 받아 왔다"며 "이번 설부터는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노'(No)라고 대답하는 며느리가 되려고 한다"고 썼다.

이 글에는 "내 인생인데 그렇게 스트레스 받으면서까지 명절을 지낼 게 있나", "저도 '네네'만 하다가 제가 죽을 것 같아서 안 그러기로 했어요", "도리 다하려다 나중에 화병만 얻습니다" 등 응원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2살 된 딸을 키우는 유모(33)씨는 "시아버지가 '이번 설에도 며칠 쉬다 가라'고 하셔서 설날에 친정 부모님도 뵈어야 한다고 말씀드렸더니 썩 내켜 하지 않으셨다"며 "명절에 부모님을 찾아뵙는 건 당연한 일인데도 시댁 어른들 눈치를 보게 되거나 남편과 말다툼이 생길까 봐 마음 졸이는 것도 스트레스"라고 했다.

배은경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노골적인 가부장제 형태로 성차별이 이뤄졌다면 2000년대 이후에는 여성들이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이유로 경력단절이 되는 등 다른 형태의 성차별로 바뀌었다"며 "명절만 되면 여성들이 여전히 이런 갈등을 겪고 있다는 것은 가정마다 상황에 따라 협상의 여지가 열려 있는 사회로 바뀌어야 함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fortu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