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화제 / 남가주 신일고 동문회]

혼자 사는 동문 뇌졸증 쓰러지자 재활·요양비 마련 한마음 한뜻 2주만에 3만5천불 모금

남가주 동문 120명 정도, 너도나도 동참 물결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이인데 "나도 돕고싶다"

소식 전해들은 본국 동문도 감동 '도움의 손길'
손태식 회장 "진정한 동문회 의미 되새겨" 울컥

LA에서 혼자 살고 있는 김모씨(53)는 지난 1월 자택에서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병원에 실려갔을 땐 이미 '골든타임'을 놓친 뒤였다. 어려운 형편에 차일 피일 미뤘던 김씨의 검진 결과는 당뇨와 고혈압으로 인한 뇌졸증. 그는 왼쪽 몸이 마비되어 왼 팔과 다리를 전혀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병원 측은 혹시 모를 2차 쇼크가 우려돼 3개월은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그뿐 만이 아니다. 김씨는 치료비 이외에도 이후 재활을 위한 요양 비용을 마련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평소 비용이 부담돼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었던 김씨에겐 이 모든 것이 청천벽력이었다. 그는 주위에 가족도, 연고도 없는 막막한 현실을 부정하고만 싶었다.

▶"액수는 중요하지 않아"
김씨는 평소 그의 모교인 '남가주 신일 고등학교 동문회'(회장 손태식·이하 신일고 동문회) 모임에 참여해 왔다. 15회 동문인 그는 평소 사진 찍기를 즐겨해 동문회 행사 때마다 자진해서'사진사'를 자청해 봉사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한터라 뇌졸증 소식을 들은 동문들의 안타까움은 컸다. 이에 김씨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일부 동문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손태식 동문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현재 남가주에 거주하고 있는 신일고 동문은 약 120명 정도인데 동문회 참여도가 저조해서 사실상 이들 중 절반 이상은 수년간 서로 얼굴 한번 보지도 못했을 정도다. 그나마 연말 송년 행사엔 60여 명이 참석하는 정도다.

손태식 회장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동문회 카톡방에 다음과 같은 공문을 올렸다.
"신일고 동문 김씨가 뇌졸중으로 왼쪽 몸이 마비 됐습니다. 퇴원 후 재활 및 요양 비용만 6개월간 약 3만불 정도 들어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가족도 없이 혼자 살고 있는 동문을 외면할 수 없어서 간곡히 부탁합니다. 재활 치료를 돕기 위한 기금 모금을 하고자 합니다. 작은 정성이 모여 큰 힘을 발휘하리라 봅니다. 힘 보태실 분들은 따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손 회장은 처음부터 카톡방에서 김씨를 제외했다. 본인이 부담을 느끼거나 혹시 모금 액수가 적어 실망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동문들의 반응은 놀라울 만큼 적극적이었다. "올해 계획된 모든 행사를 취소해서라도 모금에 보태자"면서 급기야는 "연말에 호텔에서 하기로 한 송년회를 중국집 자장면으로 대체하자" 는 등의 다양한 의견들이 카톡방에 올라왔다.

그리고 2회 동문이 2000달러를 내놓겠다고 나서면서부터 모금은 폭발적으로 이어졌다. 100달러, 200달러, 500달러…그러더니 10회 동문이 4000달러, 7회 동문이 5000달러 등을 쾌척하면서 동참이 절정에 달했다. 그뿐 아니다. 소식을 듣고 한국 본교 동문회에서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렇게 한명 한명 보내온 모금액은 2주만에 3만 5천달러를 훌쩍 넘었다.

▶빠른 쾌유로 보답하길

손 회장을 비롯한 동문들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감격했다.
손 회장은 "사실 처음에'몇천달러 정도 모아지면 다행'이라고 큰 기대는 하지 않았던 터라 감동이 수십배"라면서 "어떤 동문은 일면식도 없고, 자신의 환경도 녹록지 않은데도 큰 돈을 희사하는 것을 보고 울컥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손 회장은 한동안 김씨의 안부를 묻고 자신도 동참하겠다는 동문들의 빗발치는 전화에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그는 "액수는 중요하지 않다. 동문들이 마음을 담아 모금에 참여해 준 것에 대해 눈물나게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김씨를 위한 기금 모금은 지난 주 끝내기로 했다. 모아진 돈은 동문회에서 직접 관리하며 김씨의 재활 치료에 사용할 예정이다.

현재 김씨는 퇴원 뒤 요양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있다. 김씨를 방문한 일부 동문들은 카톡방에 김씨의 근황 사진을 올리며 점차 나아지는 김씨의 모습을 함께 나누며 그의 쾌유를 응원하고 있다.

손 회장과 동문들은 "이 모든 일을 함께 진행하면서 참여 동문 하나하나가 가슴 뜨거운 벅참을 느꼈다"며 "한마음 한뜻으로 어려울 때 서로 돕고 힘이 되준 동문회가 자랑스럽고, 동문회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는 좋은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신일고 동문회는
지난 1980년 창립해 올해로 40주년을 맞는다. 매년 1회 정기 모임과 하이킹, 4차례의 골프대회외에 시기별로'스승의 날 행사', '재학생 글로벌 트레이닝' 등의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