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신종 코로나, 항체 결합 위치 거의 같아…백신 개발 '청신호'
미 스크립스 연구소, 저널 '사이언스'에 논문

2002년 중국에서 발생해 다른 나라로 퍼진 사스(급성 호흡기 증후군) 바이러스는, 현재 팬더믹(세계적 대유행)을 일으키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사촌 격이다.

의학계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사스 코로나바이러스 2(SARS-CoV-2)'라고 부르기도 한다.

2006년 네덜란드의 한 제약회사(Crucell Holland B.V.)는 사스 바이러스에서 CR3022라는 항체를 분리했다.

중국 과학자들은 올해 초 이 항체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교차반응을 일으킬 수 있음을 암시하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교차반응'(cross-react)은, 특정 항원 결정기에서 형성된 항체가 다른 유사 항원 결정기에 반응하거나, 다른 항원 물질의 동일한 항원 결정기에 반응하는 걸 말한다. 흔히 하나의 항원 물질에 여러 개의 항원 결정기가 존재한다.

그런데 이 항체가 사스 바이러스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서 거의 똑같은 부위에 결합한다는 걸 미국 스크립스 연구소 과학자들이 발견했다.

사스 바이러스에서 분리된 CR3022 항체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서 교차반응을 일으킨다는 의미다.

이 부위가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할 뿐 아니라, 두 코로나바이러스에 똑같이 약점이 될 수 있다는 걸 시사하기도 한다.

두 바이러스의 항체 결합 부위는 서로 아미노산 염기 4개 정도 떨어져 있었다.

연구팀은 관련 논문을 저널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하고, 논문 개요도 6일 온라인(www.eurekalert.org)에 공개했다.

논문의 수석저자인 이언 윌슨 구조 생물학 석좌교수는 "이처럼 보존된 항체 결합 사이트를 알아내면, 구조에 근거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는 게 가능하다"라면서 "나아가 현재와 미래의 다른 코로나바이러스도 퇴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윌슨 교수가 이끄는 랩(실험실)은 바이러스 항체의 구조적 연구 분야에서 선구자로 꼽힌다. 그동안 윌슨 랩이 연구한 것에는 에이즈 바이러스(HIV)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도 포함된다.

연구팀은 이번에 인간 항체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상호작용을 거의 원자 수준의 해상도로 풀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고 이 도메인(결합 부위)의 베일이 완전히 벗겨진 건 아니다.

CR3022 항체는 배양 세포 실험에서 사스 바이러스를 중화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중화하지 못했다.

결합 부위는 거의 동일한데도 항체가 바이러스에 붙는 힘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서 훨씬 약했다.

그래도 이 도메인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취약부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연구팀은 말한다. 결합력이 더 강한 항체를 찾아내 이 부위를 공격하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중화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중화 항체가 약제로 개발되면 신종 코로나 감염증(코로나19) 치료는 물론이고 비감염자의 일시적 예방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