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일 감독 '월드컵 영웅' 첫대결서 V

최용수 감독의 '스리백' 뒷공간 집중 공략
中서 반년간 한솥밥… 서로 스타일 잘 알아
홍시후-최병찬 '젊은 투톱'은 간파 당해
후반 44분, 역습 기회… 토미의 '결승골'

패기가 관록을 흔들었다.
K리그 1~2부에서 펼쳐진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 '영웅전쟁'에서 패기의 초보사령탑이 웃었다. '승장'은 올해 성남FC 지휘봉을 잡으며 프로 사령탑에 데뷔한 김남일 감독이다. 김 감독이 이끄는 성남은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02' 4라운드에서 최용수 감독이 이끄는 FC서울을 1-0으로 꺾었다. 성남은 김남일 체제에서 초반 4경기 무패(2승2무.승점 8) 가도를 달리면서 울산 현대(승점 8)에 다득점에서 뒤진 3위로 점프했다. 반면 서울은 2승2패(승점 6)로 상위권 도약에 실패했다.
김 감독과 최 감독은 한.일 월드컵 동료로 지냈을 뿐 아니라 지도자로도 한솥밥을 먹은 적이 있다. 지난 2016년 여름 최 감독이 서울을 떠나 중국 장쑤 쑤닝 사령탑으로 부임했을 때 김 감독을 코치로 데려가 6개월간 호흡을 맞췄다. 서로 스타일을 너무나 잘 안다. 초반부터 서로 약점을 두드렸는데 최 감독의 관록이 더 빛났다. 김 감독은 최 감독이 지향하는 스리백 수비 뒷공간을 두드리기 위해 주전 골잡이 양동현을 벤치에 앉혔다. 기동력이 좋은 2001년생 신예 홍시후와 최병찬 두 젊은 투톱을 가동했다. 하지만 최 감독은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강력한 전방 압박을 통해 상대 공세를 제어했다.
하지만 김 감독의 성남은 물러섬이 없었다. 서울 공세가 지속하자 전반 33분 이르게 양동현 카드를 꺼내 들었다. 후반 임선영에 이어 크로아티아 공격수 토미까지 공격 지향적으로 패기로 맞서면서 승점 3에 대한 의욕을 보였다. 최 감독의 서울도 조영욱과 아드리아노 등 공격수를 후반 줄지어 투입했는데, 종반까지 양 팀 0의 균형은 깨지지 않았다. 그런데 승리의 여신은 패기의 성남 손을 들었다. 후반 44분 역습 기회에서 이태희가 낮게 깔아찬 공을 서울 수문장 유상훈이 쳐냈는데, 공교롭게도 공이 토미 발 앞에 떨어졌다. 토미는 가볍게 오른발로 차 넣으면서 결승골을 해냈다.
김 감독은 지난해 12월 취임 기자회견에서 서울을 두고 "가장 이기고 싶은 팀"이라며 도발한 적이 있다. 첫 맞대결서부터 승리가 현실화하자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그는 "(지난 서울전 승리 욕심에 대해) 도발이라기보다 기 싸움에서 지고 싶지 않았다"며 "최 감독께서 경기 후 축하한다고 해주시더라. 감사하다"고 기뻐했다. "최 감독과 중국에서 6개월 정도 생활하면서 스타일을 잘 알고 있었다"고 언급한 김 감독은 "서울 스리백 빌드업에 약점이 있다고 여겨서 초반 압박했는데 어려웠다. 병찬이나 시후 모두 상대 페이스에 끌려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행히 후반 투입한 토미가 해결해줘서 승리했다. 늘 그의 슛 능력 등을 믿었는데 보여줬다"며 웃었다. '패장' 최 감독은 "(김남일 감독은) 올해 처음 감독을 하나, 상당히 팀을 안정적으로 이끌고 있다. 상대를 힘들게 하는 노하우를 쌓는 것 같다. 고비도 있겠지만 후배로 더 성장하고 성공하는 감독이 됐으면 한다"면서 진심으로 축하했다.
두 사령탑간의 화제의 맞대결은 선수에게도 관심거리였다. 이날 결정적인 선방을 펼치며 승리를 이끈 성남 수문장 김영광은 "사실 우리도 언론에서 (두 감독에 대한) 보도를 봤다. 선수들도 더 이기고 싶었던 것 같다. 초반 실수가 많이 나와서 '큰일 나겠다'고 걱정했는데 감독께 승리를 안겨 기쁘다"고 웃었다.
전날 열린 K리그2(2부)에서는 한.일월드컵 당시 공격진에서 호흡을 맞춘 황선홍 대전하나시티즌 감독과 설기현 경남FC 감독이 사령탑으로 첫 자존심 대결을 벌여 2-2로 비겼다. 이 경기에서도 '초보' 설 감독이 베테랑 황 감독을 패배 직전까지 몰았다. 후반 공격적인 선수 교체로 선두 대전을 물고 늘어섰고 1-1로 맞선 종료 직전 상대 자책골을 끌어냈다. 하지만 대전은 후반 추가 시간 안드레가 극적인 페널티킥 동점골로 팀을 구해냈다.
첫 맞대결부터 불꽃을 튀긴 '월드컵 영웅' 사령탑간의 전쟁은 K리그를 대표하는 또다른 재밋거리가 될 전망이다.

상암 | 김용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