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가장 중요한 역할은
실수 없이 잘 잡고, 잘 막고
도루 잡는 평범한 것들이다

포수가 야구에서 얼마나 중요한 포지션인지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유일하게 야수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경기를 조율한다. 야구의 시작점인 투수를 유도하는 선수가 바로 포수다. 그래서 포수가 타팀으로 이적하면 전소속팀은 사인 체계를 고쳐야 한다.
이흥련(31)이 화려하게 조명받고 있다. SK로 이적하자마다 기대했던 수비는 물론이고 이틀 연속 홈런포를 터뜨리며 공격에서도 영양가 만점 활약을 펼치고 있다. 주전포수 이재원의 부상공백을 메우는 차원을 넘어 포수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있다. 그동안 이흥련은 공격형 포수로 인정받진 못했다. 지난해까지 6시즌 동안 281경기에서 타율 0.249에 9홈런을 기록했다. 안정감 있는 포수였지만, 공격에서 2% 부족하며 주전까지 도약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가 이번에 눈길을 사로잡은 장면은 홈런에 한정되지 않는다. 홈런후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이흥련은 상대팀 분석 자료를 집어들어 살펴보기 시작했다. 다음 이닝 수비를 착실하게 준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흥련은 이날 경기 후 "이적 첫 날부터 너무 임팩트가 있어 내일이 좀 걱정된다"고 웃으며 "내게 우선하는 건 수비에서 실수없이 잘 잡아주고 막아주고 도루를 잡는 평범한 것들이다. 수비에서 슬럼프 없이 꾸준히 잘하고 싶다"라고 했다. 그에게 자신의 3안타는 후순위였다.
이유가 있었다. 긴 백업생활을 통해 몸에 배인 태도가 있다. 지난 2015년 6월 2일이었다. 이날도 이흥련의 야구인생에서 빠트릴 수 없는 날이다. 당시 삼성 소속이던 그는 롯데를 상대로 4안타 경기를 했다. 이흥련은 팀내 베테랑 진갑용, 이지영에 이어 세번째 포수였다. 기회가 많지 않았다. 시즌 3번째 선발출전한 백업포수에게 4안타를 기대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이흥련은 8번 타자로 출전해 4타수 4안타 2타점으로 펄펄 날았다. 4안타는 그의 한경기 최다안타 기록이 되었다. 맹타를 휘두른 비결에 대해 그는 "운이 좋았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주전 마스크를 썼지만, 3타수 무안타로 침묵하며 경기후반 이지영과 교체됐다. 4안타 경기는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그가 일희일비 하지 않는 이유다. 이흥련은 소문난 연습광이기도 하다. 당시 류중일 감독은 그의 원정경기 룸메이트로 구자욱을 특별 지명했다. 실력에 출중한 외모까지 겸비한 1군 2년차 구자욱이 이흥련을 보고 배우길 바랐다. 시간이 흘러 이흥련은 삼성을 떠나 두산을 거쳐 SK로 이적했다. 그리고 10년간 축적된 땀은 배신하지 않았다. 이적 첫 날 3안타 경기에 이어 31일 두번째 경기에선 5회 타석에서 역전 솔로홈런을 쏘아올렸다. 연속경기 홈런이었다. 그런데 이흥련은 더그아웃에서의 환영 세례 후, 선발투수 박종훈 옆에 섰다.

배우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