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 임규태

순우 처음 만나 2~3개월은 지켜봐
단점 고치기보단 장점 살리려 노력
올해 초 4주 연속 투어 8강 상승세
경기 집중하도록 주위 정리만 했죠
도쿄올림픽서도 좋은 성적 내보자

한국 남자 테니스 '넘버원' 권순우

꼼꼼히 챙겨주시는 코치님 덕에 결실
상대 선수 분석으로 경기 쉽게 풀어가
조코비치.페더러와도 붙어보고 싶다
올림픽 메달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냐
100위 안에 꾸준히 남는 선수 되고파

 "올림픽이요?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잖아요."
 지난해 초만 해도 200위권에 머물던 권순우(70위·당진시청·CJ제일제당후원)는 1년 여 만에 한국 남자테니스 '넘버원'이 됐다. 지난 1~2월에는 4주 연속 투어 8강 진출이라는 기록을 썼고, 최고 순위도 69위까지 달성하며 가파른 상승 가도를 달렸다. 도쿄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랭킹 포인트를 꾸준히 쌓았지만 갑작스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돌발 변수가 터지면서 권순우의 걸음도 잠시 멈추게 됐다. 이와 같은 권순우의 상승 페이스는 임규태 코치의 공을 빼고서는 말할 수 없다. 지난해 3월 권순우 전담 코치로 부임한 임 코치는 세심하고 상대 맞춤형 지도로 권순우의 잠재력을 끄집어냈다. 스포츠서울 창간 35주년 특집 인터뷰를 위해 만난 임 코치는 권순우의 상승세 비결에 대해 "훌륭한 선수를 만난 덕분"이라며 권순우에게 공을 돌렸고, 권순우는 "모든 걸 하나하나 다 챙겨주신다. 감사한 부분이 너무 많다"고 임 코치를 향한 고마운 마음을 드러내며 화답했다.
 
◇권순우를 깨운 임 코치의 맞춤형 지도
 임 코치가 전담 코치로 부임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권순우를 가만히 관찰하는 일이었다. 이것저것 바꾸려 들지 않았다. 임 코치는 "최대한 멀리서 그동안 어떻게 해왔는지를 지켜봤다. 갑자기 바꾸려고 하면 마음에 벽이 생길 수도 있어서 2~3달 동안은 코칭을 하지 않았다. 그 이후에 성적이 나면서부터 조금씩 바꾸려고 했다. 단점을 고치기보다는 장점을 살리려 노력했다"고 회상했다. 권순우는 "그전에는 라켓을 집어던지고 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멋쩍은 웃음을 지으면서 "코치님이 옆에서 조금씩 조금씩 지적을 해줬고, 대화를 많이 했다. 혼자 다닐 때는 생각할 수 없었던 것들이 바뀌면서 발전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차츰 성과가 나왔고, 재미도 붙었다. 권순우는 "상대가 정해지면 코치님이 영상을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본다. 코치님 얘기를 듣고 경기장에 나가면 다 맞아떨어진다. 그 선수가 확률적으로 서브를 어디에 넣는다는 이야기를 하면 거짓말처럼 그렇게 된다. 알고 들어가니까 경기가 쉬웠고 신기했다. 덕분에 리턴 게임이 많이 좋아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게 안 맞아떨어졌으면 나는 잘렸지"라는 임 코치의 말에 박장대소가 터졌다.
◇"케미요? 10점 만점에 10점이죠"
 임 코치의 지도 철학은 확고하다. 선수와 대화가 중심이다. 강요하지 않는다. 임 코치의 경험에서 정립된 방침이다. 그는 "호주에 유학을 갔었는데 '한 번 해보고 져봐'라는 식의 자율적인 교육 방식이었다. 그래서 지도자를 하게 되면 강압적으로 가르치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첫 번째 철학은 선수 중심이다. 선수가 해보고 싶은 대로 해보고 안되면 조언하려고 한다. 선수 의견이 가장 먼저"라고 강조했다. 경기장에서도 임 코치의 세심함은 두드러진다. "경기장을 가면 하나도 빠짐없이 다 챙겨준다. 연습공, 타월, 음료수까지도. 진짜 그런 감사한 장면들이 많이 떠오른다.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고 말했다. 손사래를 친 임 코치는 "투어는 정글이다. 한 경기 이기는 것도 어렵다. 선수가 다른 생각 하면 적에게 잡혀먹는다. 선수가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게 주위를 정리하는 게 내 직업이고 기본이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고 겸손함을 보였다.
 1997년생의 권순우와 1981년생의 임 코치의 나이 차는 16살. 그럼에도 세대 차이는 서로 느끼지 않는다. 권순우는 "코치와 선수가 아닌 형·동생처럼 지낸다. 경기가 없는 날에는 게임을 통해 내기도 하고, 시간이 나면 놀이공원도 함께 간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투어를 위해 전 세계를 이곳저곳 누비며 돈독해진 두 사람의 모습이었다. 서로의 '케미'를 묻는 질문에는 한 치도 망설이지 않고 "10점 만점에 10점이죠"라며 한목소리를 냈다.
◇나달과 꿈 같은 맞대결…"사람 아니었죠"
 지난시즌 괄목할만한 성적을 낸 권순우는 올시즌 초반에도 맹렬한 기세로 투어를 다녔다. 톱 랭커들과의 싸움에서도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승승장구했다. 임 코치는 투어를 다니면서는 권순우에게 큰 칭찬을 하지 않았다. 그는 "선수가 잘할 때 잘한다고 하면 만족할 수 있어서 짧은 표현만 했는데 사실 엄청났다. 투어 다니는 선수들이 순우에게 '머신'이라고 했다. 저를 향해서는 순우를 쉬지 못하게 한다고 '나쁜 코치'라고 했다"라고 일화를 공개했다.
 그중에서도 라파엘 나달(2위·스페인)과의 만남은 권순우에게도 임 코치에게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권순우는 지난 2월 멕시코오픈 8강에서 나달을 만나 세트 스코어 0-2로 패했다. 권순우도 경기를 지켜본 임 코치도 결론은 "나달은 사람이 아니다"였다. 임 코치는 "경기가 끝나고 순우를 보자마자 제가 '쟤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순우가 못한 경기가 아니었다. 경기 당일 오전에 일찍 몸을 풀면서 연습한 걸 하나도 못 보여줬다"고 혀를 내둘렀다. 비록 패했지만 소중한 자산이 됐다. 나달과의 맞대결을 포함해 거듭된 톱 랭커들과의 경기로 권순우는 자신감을 장착하게 됐다. 그는 "쉽게 지거나 실수를 해서 형편없이 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신감이 생겼다"면서 "'빅 3'라 불리는 노박 조코비치(1위·세르비아)와 로저 페더러(4위·스위스)와도 큰 무대에서 경기를 한번 해보고 싶다"고 눈을 반짝였다.
◇한마음으로 바라는 올림픽 무대…"출전한다면 분명 좋은 성적 낼 것"
 권순우와 임 코치는 올시즌 목표로 도쿄올림픽 진출을 잡았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올림픽이 내년으로 미뤄지면서 목표 달성도 잠시 보류하게 됐다. 올 초 권순우의 기세였으면 올림픽 진출 가능성이 컸다. 더욱이 한국 선수로는 2008 베이징올림픽 당시 이형택 이후에 아무도 올림픽 무대를 밟지 못했기에 출전만으로도 높게 평가받을 만하다.
  박준범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