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개 혐의 중 20개 유죄…정경심과 공모 혐의는 상당부분 인정 안돼

'기업사냥꾼' 행위는 엄격히 판단…총 72억6천여만원 횡령·배임 인정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박형빈 기자 =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사모펀드 의혹'의 핵심 인물인 5촌 조카 조범동(37)씨가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다만 정경심 동양대 교수와의 공모 관계로 기소된 혐의는 상당 부분 무죄로 판단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소병석 부장판사)는 30일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된 조씨에게 징역 4년과 벌금 5천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조 전 장관의 5촌 조카로 정 교수와 금융거래를 한 것 때문에 정치권력과 검은 유착을 통해 상호 이익을 추구한 것이 이 범행의 주된 동기라는 시각이 있지만, 권력형 범행이라는 증거가 제출되지는 않았다"라며 "이런 일부 시각이 피고인에게 불리한 양형 사유로 취급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조씨는 사모펀드 운용사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코링크PE)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면서 각종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두 차례에 걸쳐 기소됐다.

조씨에게 적용된 구체적 혐의는 총 21개에 이른다. 이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재판부는 이 가운데 20개 혐의를 유죄, 혹은 일부 유죄로 판단했다. 인정된 횡령·배임 금액은 총 72억6천여만원이다.

◇ '가족 펀드 의혹' 관련 상당수 무죄…정경심 공모도 인정 안돼

첫째 갈래는 이른바 '가족 펀드' 의혹과 관련돼 있다. 이 부분의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상당 부분 무죄 판단이 내려졌다.

검찰은 정 교수가 2017년 3월 코링크PE에 5억원을 투자하고, 조씨는 이에 대한 수익률을 보장해주기 위해 이듬해 9월까지 19회에 걸쳐 코링크PE 자금 1억5천700여만원을 보내줘 횡령했다고 기소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정 교수 남매가 조씨에게 총 10억원을 '대여'했고, 이에 대한 이자를 받은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 중 절반인 7천800여만원에 대해서만 조씨의 횡령을 인정했다.

아울러 정 교수 남매는 이자를 받는 데 특별한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공범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2017년 7월 정 교수 가족의 자금 14억원을 코링크PE의 '블루펀드'에 출자받고도 금융위원회에는 약정금액 99억4천만원으로 부풀려 신고한 혐의도 무죄 판단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조씨가 코링크PE의 대주주로서 회사의 최종 의사결정권자 지위에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실제로 거짓 변경보고를 임직원들에게 시키거나 보고받지는 않았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사모펀드가 출자 약정액보다 적은 금액을 투자받고 운영되는 것이 이례적인 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조씨에게 거짓으로 변경보고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인정하기도 어렵다고 봤다.

이처럼 조씨의 혐의가 무죄로 판단되는 만큼, 정 교수의 공모 여부 판단은 아예 불필요하다고 재판부는 잘라 말했다.

다만 재판부는 조씨가 어머니를 코링크PE 직원으로 허위 등재한 뒤 2017∼2019년 급여 명목으로 7천714만원을 횡령한 혐의는 유죄로 인정했다. 블루펀드가 투자한 가로등 점멸기 제조업체 웰스씨앤티를 활용한 13억원의 횡령 혐의도 유죄 판단이 내려졌다.

◇ 증거인멸 교사 혐의만 '정경심 공모' 인정해 유죄 판단

'가족 펀드' 의혹에서 파생된 두 번째 갈래인 증거인멸·은닉 교사 혐의에 대해서만 재판부는 정 교수의 공모관계를 인정했다.

이는 지난해 8월 조 전 장관이 지명된 이후 각종 의혹이 제기되자 조씨가 코링크PE 직원들을 시켜 정 교수 남매의 이름이 등장하는 자료 등을 삭제하도록 시켰다는 내용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공범(정 교수)로부터 '동생 이름이 드러나면 큰일 난다'는 전화를 받고 증거를 인멸하게 했다고 진술한 점 등에 비춰 공범과 공모해 범행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공모 판단을 두고 "피고인의 범죄사실 확정을 위해 공범 여부를 일부 판단했지만, 이는 기속력 없는 제한적이고 잠정적 판단일 수밖에 없다"고 단서를 달았다.

◇ 무자본 인수합병 후 50억대 횡령…'기업사냥꾼' 수법 대부분 유죄

세 번째 갈래는 코링크PE가 2017∼2018년 코스닥 상장사인 영어교육업체 WFM을 인수한 것과 관련됐다.

이른바 '무자본 인수합병'으로 회사를 장악한 뒤 주가조작으로 차익을 노리거나 회사 자산을 빼돌리는 '기업사냥꾼' 범죄다.

이 행위에 대해서는 재판부는 대부분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검찰은 조씨가 WFM을 인수한 뒤 음극재 사업을 하는 IFM을 합병시켜 우회상장을 하려 했다고 본다.

자금이 부족한 조씨는 우선 주식을 사들이는 계약을 체결한 뒤 이를 사채업자들에게 양도하거나 담보를 제공하는 등의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했다.

이후 금융당국에 '자기자금'으로 인수했다고 거짓 보고·공시를 한 혐의가 유죄 판단을 받았다.

차입자본으로 회사를 인수했으니 나중에 주식을 팔아 갚으려면 주가를 띄워야 한다. 이를 위해 조씨가 WFM이 100억원대 전환사채를 성공적으로 발행했다고 공시했지만, 전환사채를 사들인 사채업자에게 WFM의 부동산을 담보로 잡혔다는 사실은 숨긴 부당거래행위 역시 인정됐다.

검찰은 이렇게 회사를 인수한 조씨가 2018∼2019년 WFM 자금 63억여원을 빼돌렸다고 보고 10건의 횡령·배임 혐의를 적용했다.

허위 금전대차계약서를 작성하거나 공장 공사·설비대금을 부풀리는 방식, 카페 직원을 WFM 직원으로 등재해 허위 급여를 받는 수법 등이 사용됐다.

재판부는 일부 횡령금액만 새로 산정해 58억여원의 횡령·배임을 유죄로 판단했다.

◇ 검찰 "신종 정경유착" 주장했으나 안 받아들여

검찰은 앞선 결심 공판에서 조씨의 이런 범행을 '신종 정경유착'이라고 규정했다.

조 전 장관이 직접 공모·가담하지는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관여돼 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인이 조국의 배우자 정경심과 거래하는 과정에서 일부 허위 문서나 증빙자료에서 비난 가능성 있는 내용을 폐기한 사실은 확인되지만, 권력의 힘을 이용해 불법적으로 재산을 증식한 '권력형 범행'이 증거로 확인되지는 않는다"고 일축했다.

정 교수와의 공모관계가 인정된 증거인멸교사 혐의에 대해서는 "국가형벌권의 적절한 행사가 방해돼 죄질이 좋지 않아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WFM과 관련된 범행에 대해서는 "전형적인 기업사냥꾼 수법"이라며 "피해가 선량한 투자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자본시장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훼손한 범행"이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다만 익성 측에서도 범행에 가담한 부분이 많고, 일부 변제가 이뤄진 점 등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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