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영상 촬영중 베이루트 대폭발 겪은 미국인 신부 "곳곳서 피 냄새, 죽음 떠올려"

레바논

"체류 호텔 초토화, 살아있는게 기적
가장 행복해야할 결혼식 망쳐 슬퍼"

미국에서 의사로 일하는 29살의 여성 이스라 세블라니는 지난 4일 흰색 드레스를 입은 신부로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카메라를 바라봤다. 카메라가 그의 웃는 얼굴에 초점을 맞춘 순간, 굉음과 함께 근처 건물 유리창이 부서지고 사방에 연기가 날렸다. 엄청난 폭발음이 들리더니 신부의 뒷편으로 건물 유리 파편이 흩어졌다. 신부의 웨딩드레스는 돌풍에 휩싸인 듯 이리저리 흩날렸다. 당황한 신부와 신랑, 파티에 참석한 하객들은 급하게 현장을 빠져나왔다. 아수라장이 된 촬영 현장은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영국 일간 가디언과 BBC방송 등은 최소 73명이 숨지고 3700여명의 부상자를 낸 베이루트 폭발 참사 당시 영상에 생생하게 포착된 현지인들의 사연을 5일 소개했다.

참사 당일은 세블라니의 결혼일이었다. 결혼식 영상을 찍던 도중 폭발이 일어났다.

그는 "결혼식 준비를 2주 동안 했다"며 "다른 모든 여성처럼 '내가 결혼한다'는 생각에 기뻤다"고 말했다. 이어 "폭발이 일어났을 때 상황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며 "'내가 여기서 죽는 건가, 어떻게 죽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처음 폭발이 일어난 순간 도대체 이게 무슨일인가 싶었다"며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피를 흘리고 소리치며 죽어갔다. 예전에는 '피냄새가 난다'는 말의 뜻을 몰랐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고 말했다.

남편 수베이는 자신들이 머물던 호텔 안에 들어가 가까스로 소지품과 여권을 찾았다며 "호텔 내부는 믿을 수 없이 끔찍했다"고 말했다. 세블라니는 "나는 잠시 기절했다가 깨어났으며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며 "우리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신께 감사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3주 전 결혼식을 위해 베이루트로 왔다는 이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레바논에서 살 수 없다고 마음을 굳혔다고 가디언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