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브러진 소 사체 주변엔 온통 파리떼·악취…수마 할퀸 남원 축사 '처참'

"자식같이 키운 소들인데"…하루아침에 80∼90마리 소 잃은 농민 '눈물'

(남원=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 "축사 천장까지 물이 차 버렸어. 내가 자식같이 키운 소들인데…"

수마가 할퀴고 지나간 축사 모습은 전장처럼 처참했다.

눈도 채 감지 못한 소 사체가 곳곳에 널브러져 있고, 터져버린 사료 포대가 온 마당에 흩뿌려져 있었다.

배에 가스가 가득 찬 소 사체 주변으로는 큼지막한 파리들이 쉴 새 없이 모여들었다. 빗속에 반쯤 잠긴 소 사체에서는 형용할 수 없는 고약한 악취가 뿜어져 나왔다.

소 사체에서 흐르는 검붉은 물과 분뇨, 이날 내린 빗물이 축사 곳곳에 모여 커다란 웅덩이를 만들었다.

종잇장처럼 접힌 지붕과 엿가락처럼 휘어버린 축사 기둥은 집중호우 당시 피해를 짐작게 했다.

10일 오후 찾은 전북 남원시 송동면 최모(62) 씨 축사는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마치 폭격이라도 맞은 듯 축사 10개 칸 모두 성한 곳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부서져 있었다.

최씨 축사는 섬진강댐 방류가 시작된 지난 8일 오후부터 침수가 시작됐다. 서서히 차오른 물은 집중호우를 견디지 못한 제방이 무너지면서 기어코 축사를 삼켰다.

최씨는 소들을 구하기 위해 차를 끌고 축사 입구까지 갔으나 처참한 광경에 이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축사 절반 이상 차오른 물 사이로 '음매, 음매' 하는 안타까운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도저히 인력으로는 소들을 구할 수 없었다고 했다.

전날까지 물이 가득 차 있던 최씨 축사는 이날이 돼서야 물이 빠지고 그 모습을 드러냈다. 120마리에 달했던 소는 30∼40마리로 줄었고, 축사 지붕과 벽은 곳곳이 뚫려 버렸다.

전기조차 끊겨 남아 있는 소에게 물과 사료도 제대로 주지 못하는 상황이다.

사라진 소들은 섬진강 지류를 타고 하류 어딘가로 휩쓸려 떠내려갔을 것이라고 최씨는 말했다.

최씨는 "갑자기 물에 무섭게 차오르니까 차도 들어갈 수 없어서 소들을 구하지 못했다"며 "울부짖는 소들을 볼 때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아직 복구를 시작도 못 했는데 오늘 또 비가 내리고 있어 막막할 따름"이라며 "태풍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벌써 걱정이 앞선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축사 주변에서는 최씨의 한우 이외에도 많은 소가 눈에 띄었다.

대부분 파랗게 변해버린 혓바닥을 길게 빼고 쓰러져 있었고, 일부는 물속에 잠겨있거나 길을 잃고 너른 들판을 배회하고 있었다.

현장에 도착한 축협 직원들이 구조를 위해 다가가자, 물속에 있던 소들은 놀란 듯 발버둥 치며 몸을 쉴 새 없이 흔들어댔다.

오전에만 이 주변에서 살아있는 소 30여마리가 축협 직원들에 구조됐다. 이들 소는 감염병 등에 대한 검사를 마치고 침수되지 않은 인근 축사로 옮겨질 예정이다.

남원 축산업협동조합은 지난 사흘 동안 내린 비로 남원시 금지면과 송동면 일대에서만 소 1천여마리 중 500마리 이상이 폐사하거나 유실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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