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계장서 드러누운 동물권리보호가들 '업무방해' 벌금 300만원

"모든 동물의 삶 존중받아야…그러나 피고인 행위는 정당성·당위성 없어"

(수원=연합뉴스) 강영훈 기자 = 도계장 앞에서 드러누워 "닭을 죽이지 말라"고 구호를 외친 동물권리보호 활동가들이 법원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모든 동물의 삶이 존중받을 권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타인에게 손해를 끼친 피고인들의 행위는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없다며 유죄 판결을 내렸다.

수원지법 형사2단독 우인선 판사는 20일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A씨 등 4명에게 각각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A씨 등은 지난해 10월 4일 세계 동물의 날을 맞아 경기도 용인시 소재 한 도계장 앞에서 콘크리트가 담긴 여행용 가방에 손을 결박한 채 도로에 드러누워 생닭을 실은 트럭 5대를 가로막고 "닭을 죽이지 말라"는 구호를 외치며 4시간 이상 업무를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동물권리보호 활동가 단체인 DxE(Direct Action Everywhere) 소속인 A씨 등은 사건 당일 세계 각지에서 진행된 글로벌 락다운(도살장 등을 점거해 업무를 중단시키는 직접행동)의 일환으로 시위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들은 벌금 300만원에 약식 기소했으나, A씨 등은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A씨 등은 지난달 16일 결심공판에서 닭을 비롯한 소, 돼지가 도살되는 현장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공개하며 최후 진술을 했다.

이들은 "닭과 저의 목숨의 무게는 왜 이렇게 다른가"라며 "살고자 하는 의지는 사람과 닭 모두에 있다. 동물에도 권리를 주는 정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A씨 등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 판사는 "1978년 유네스코 세계동물권리선언은 모든 동물의 삶은 존중받을 권리가 있고, 동물은 부당하게 취급받거나 잔인하게 학대받지 않아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며 "점진적 속도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도 이런 논의를 확장해 1991년 동물보호법을 제정했고, 개정을 거쳐 동물보호의 수준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법이 밝히고 있듯이 이제는 동물을 단순히 식량자원으로 다루는 것은 지양해야 하며, 도축 과정에서도 생명을 존중하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피고인들의 신념은 법 제정 취지와 다르지 않고, 동물을 아끼는 순수한 마음에서 이런 일을 벌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부연했다.

우 판사는 "그러나 피고인들의 행위는 정당성이나 당위성을 부여받기는 어렵다"며 "비위생적 사육환경, 생명존중이 없는 도축 과정 만을 바라보며 범죄사실과 같은 행동을 할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는 않을지 생각하고 행동하면 언젠간 다수의 공감과 지지를 얻으리라 본다"고 판시했다.

재판이 끝난 뒤 A씨 측은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A씨 측은 "판결문에 '동물권리'가 언급됐다는 점은 의의가 있다"면서도 "법원은 여전히 동물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 인간 중심적이고 보수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ky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