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대통령, 22∼24일 3차례 보고받아…22일엔 '실종 관련 서면보고'

靑, 문대통령 연설 있던 23일 새벽 관계장관회의서 '첩보 분석'

"15일에 제작된 유엔연설 영상…첩보 신빙성 미확인 상태서 수정 불가능"

(서울=연합뉴스) 박경준 기자 = 북한이 서해 최북단 소연평도에서 실종된 남측 공무원을 북측 해상에서 사격 후 시신을 불에 태우는 '반인륜적 행위'를 저지르는 동안 청와대도 긴박하게 움직였다.

청와대는 24일 해양수산부 소속 목포 소재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공무원 A씨가 21일 실종됐다는 첩보를 보고받은 22일부터 사흘간 이뤄진 청와대 내부 대응을 비교적 상세히 공개했다.

다수의 채널을 통해 입수된 첩보들의 신빙성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총 세 차례의 보고가 있었고, 문 대통령은 국민에게 있는 그대로 상황을 알리라고 지시했다.

진상을 파악하는 동안 국제사회에 한반도 종전선언 지지를 호소한 문 대통령의 유엔총회 기조연설이 적절했느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으나, 청와대는 북한의 만행과 문 대통령의 연설을 연계하지 말아 달라고 강조했다.

◇ 22일 오후 '실종 발생' 첫 보고…문대통령 "국민이 분노할 일"

A씨가 실종된 것은 21일. 이 사실이 문 대통령에게 처음 보고된 것은 다음날인 22일 오후 6시 36분이다.

문 대통령은 'A씨가 해상에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고가 발생해 수색에 들어갔고, 북측이 그 실종자를 해상에서 발견했다' 첩보를 서면으로 보고받았다.

이후 4시간 남짓 지난 오후 10시 30분, 청와대는 '북한이 월북 의사를 밝힌 A씨를 사살한 뒤 시신을 훼손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이에 23일 새벽 1시∼2시 30분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서훈 국가안보실장, 이인영 통일부 장관, 서욱 국방부 장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등이 청와대에 모여 상황을 공유했다.

이들이 첩보의 신빙성을 분석하고 대응을 논의하는 사이 국제사회에 종전선언을 지지해 달라는 내용을 담은 문 대통령의 유엔총회 기조연설 영상은 새벽 1시 26분부터 16분간 공개됐다.

노 실장과 서 실장은 밤새 분석한 첩보 결과를 23일 오전 8시 30분 문 대통령에게 대면 보고했다.

문 대통령은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고 북측에도 확인하라"면서 "첩보가 사실이면 국민이 분노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실관계를 파악해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알리라고 지시했다.

청와대와 정부는 이날 오후 4시 35분 유엔사 군사정전위 채널로 북한에 사실관계 파악을 요청하는 통지문을 발송했다.

24일 오전 8시 청와대에서는 관계장관회의가 소집됐고, 국방부는 이 자리에서 이번 사건과 관련한 분석 결과를 내놨다.

노 실장과 서 실장은 회의 직후인 오전 9시 문 대통령을 대면해 이 내용을 보고했다.

첩보의 신빙성이 높다는 보고에 문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소집해 정부 입장을 정리하고, 현재까지 밝혀진 내용을 국민에게 있는 그대로 발표하라"고 지시했다.

매주 목요일 오후에 정례적으로 열리던 NSC 상임위는 이날 정오로 앞당겨졌고, NSC 사무처장인 서주석 안보실 1차장은 오후 3시 북한의 반인륜적 행위를 규탄하는 입장을 밝혔다.

그사이 문 대통령은 오후 2시 경기 김포의 민간 온라인 공연장에서 디지털 뉴딜 문화콘텐츠산업 전략 보고회를 주재하는 등 예정된 일정을 소화했다.

◇ 대북 대응·대국민 공개 왜 늦어졌나…靑 "첩보 신빙성 확인"

이번 사건과 관련한 첩보를 입수하고 이틀이 지나서야 청와대와 정부가 이를 공개하고 입장을 표명한 것을 두고 그 조치가 적절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A씨가 북측으로 넘어가 북측 인원과 접촉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도 사실상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아 사망을 막지 못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이에 청와대는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는 답변을 내놨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첩보의) 신빙성이 높은 상태이기는 하지만 최종적으로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였다"며 "사살해서 시신을 훼손한 것이 사실인지 파악하는 데 여러 정보와 방법을 동원했다"고 밝혔다.

이어 "첩보만 갖고 (사건을) 발표할 수는 없다"며 "청와대가 아주 긴박하게 대응했다"고 부연했다.

23일 새벽에 관계장관회의가 열린 뒤 같은 날 오전 8시 30분에 문 대통령에게 A씨가 총격살해됐다는 사실이 보고된 것과 관련해서도 "정밀한 분석이 끝난 즉시 보고한 것"이라며 "이른 시간(에 보고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또 "북한과는 핫라인이 끊어져 있다"고 말해 청와대·정부가 북한과의 소통을 통해 사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임을 시사했다.

◇ 北 만행 알고도 종전선언 제안했나…"유엔 영상연설, 18일에 발송"

북한이 A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것을 알고도 국제사회에 종전선언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 옳았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문 대통령에게 시신 훼손 사실까지 보고된 것이 23일 오전 8시 30분이기는 하지만, 청와대가 하루 전인 22일 오후 10시 30분에 해당 첩보를 입수했다면 연설을 수정하거나 취소하는 게 맞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수정·취소는 불가능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문 대통령의 연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의 여파로 각국 대표단이 총회 장소인 미국 뉴욕에 가지 못한 상황에서 다른 나라 정상의 연설과 마찬가지로 영상으로 공개됐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영상 연설이 지난 15일에 녹화돼 18일에 유엔으로 발송됐다고 전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첩보의 신빙성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연설을 수정한다거나 하는 판단을 하지 못했다"며 "이런 사안이 있을 것으로 예측하지도 못했으므로 수정도 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kj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