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잡지 보며 패션 관심…분카패션대 입학한 첫 남학생

무일푼으로 1965년 프랑스행 배에 몸실어

1976년 겐조 설립 후 1993년 루이뷔통에 매각

30년 전성기 구가…"패션에 색깔·빛 불어넣었다"

(서울·파리=연합뉴스) 이윤영 기자 현혜란 특파원 = '패션의 나라'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성공을 거둔 일본 출신 디자이너 다카다 겐조(高田賢三)가 4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겐조의 대변인은 그가 이날 프랑스 파리 인근 뇌이쉬르센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고 AFP 통신, 주간지 르푸앙 등이 전했다. 향년 81세.

겐조는 고령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에 감염되면서 건강이 악화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화려한 색감과 꽃무늬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으며, 일본 디자이너로서는 파리에서 처음 명성을 얻었다고 BBC가 보도했다.

겐조의 대변인은 "평생 8천개에 가까운 작품을 남기며 예술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밝혔다.

1939년 일본 효고(兵庫)현 히메지(姬路)에서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겐조는 어렸을 때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누나들의 패션 잡지를 탐독하며 바느질에 관심을 보였고, 애초 고베대학교에 진학했으나 곧 관두고 분카패션대학에서 진짜 원하는 공부를 시작했다.

분카대학은 그전까지 모두 여학생만 받았으며, 겐조가 첫 남학생이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전했다.

졸업하자마자 프랑스 마르세유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은 그는 홍콩, 베트남, 인도를 거쳐 1965년 파리에 당도했다.

애초 단순히 파리를 방문하려던 목적이었던 겐조는 지인은 물론 돈도 한 푼 없었고, 불어도 거의 못 했다고 한다.

처음부터 그가 성공 가도를 걸은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 브랜드 레노마에서 보조 스타일리스트로 취직한 그는 1970년 자신의 첫 번째 매장 문을 열었다. 그때 그의 나이는 서른이었다.

일본식 문화와 서양식 문화를 접목한 겐조의 손에서 태어난 작품들은 파리지앵의 마음속으로 파고들었고 1976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세상에 내놨다.

여성 컬렉션으로 디자이너 생활을 시작한 겐조는 1983년 남성 컬렉션을 선보였고 1988년 향수를 출시했다. 겐조 향수병에 그려진 꽃은 겐조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1994년 여름 파리를 대표하는 다리 '퐁뇌프'를 꽃과 담쟁이덩굴로 수놓은 것도 겐조의 작품이었다.

패션쇼가 끝나고 무대인사를 할 때면 소년 같은 웃음을 잃지 않았던 겐조는 1993년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에 자신의 브랜드를 매각한다.

그는 6년이 지난 1999년 패션계에서 떠나겠다고 발표하면서 30년 가까이 바쳤던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마무리했다.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트위터에 "엄청난 재능을 가진 디자이너로서 패션에 색깔과 빛을 불어 넣었다"며 "파리는 아들과도 같은 겐조를 잃어 슬픔에 잠겼다"고 애도했다.

runr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