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히 진행된 일은 절대 아니다. 2016년 한국 선수들이 나란히 빅리그 무대에 오르기에 앞서 현지 스카우트들은 이들을 다음주자로 바라봤다. 언젠가는 빅리그에 진입할 것을 예상하면서 긴 시간을 들여 스카우팅 리포트를 작성했다. KBO리그를 대표하는 유격수 김하성(25)과 외야수 나성범(31)이 메이저리그(ML) 진출을 향한 첫 번째 발자국을 찍었다.
김하성은 지난달 25일, 나성범은 지난달 30일 소속 구단과 한국야구위원회(KBO)를 통해 ML 포스팅 공시를 마쳤다. 경우에 따라 메디컬 테스트 결과를 비롯한 추가 자료가 필요할 수 있지만 어쨌든 두 선수 모두 빅리그 진출을 공식화했다. 2015년 겨울 박병호(미네소타), 김현수(볼티모어), 오승환(세인트루이스)이 나란히 빅리그 진출에 성공한 후 가장 많은 한국 선수들이 동시에 빅리그에 데뷔할 수 있다. KIA 양현종 또한 프리에이전트(FA) 자격으로 빅리그 문을 두드리고 있어 2021시즌에는 한국선수 3명이 세계 최고 무대에서 '올드 루키'로 활약할지도 모른다. 세 선수 모두 일찌감치 미국 현지 에이전시를 고용해 유연하게 빅리그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각자 처한 상황은 다르다. 주목도는 김하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공수주 두루 뛰어나면서 성장을 거듭하는 만 25세 유격수를 탐내지 않을 팀은 없다. 김하성 또한 지난해부터 3루 수비도 소화했고 장타력을 향상시키며 자신의 가치를 끌어올렸다. 올해 처음으로 30홈런 고지를 밟고 장타율 0.500을 넘겼다. 지난해 한 내셔널리그팀 스카우트는 "당장 빅리그 구단이 탐낼 한국선수는 김하성 한 명 뿐"이라고 말한 바 있다.
현지 언론은 김하성을 이번 겨울 FA 톱10으로 평가한다. 계약기간 3~4년 계약규모 4000만 달러 이상을 예상한다. 텍사스, 신시내티, 토론토, LA 에인절스 등을 유력 행선지로 꼽고 있다. CBS스포츠는 지난달 30일(한국시간) "김하성은 빅리그에서도 유격수 혹은 3루수로 자리를 유지할 것이다. 타율은 리그 평균 수준이면서 매년 12개에서 15개 가량 홈런을 터뜨릴 수 있다. 주자로서 가치도 높은 선수"라고 한 빅리그 스카우트의 평가를 전했다.
반면 나성범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이다. 장타력은 뛰어나지만 나이와 포지션, 다재다능함에 있어 김하성보다 가치가 떨어진다는 평가다. 5년 전 빅리그에 진출한 김현수와 비교해도 그렇다. 2015년 12월 만 27세였던 김현수는 볼티모어와 2년 700만 달러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당시 김현수 또한 수비와 주력은 마이너스, 타격은 플러스 요소로 평가받았다. CBS스포츠는 "나성범은 우익수와 지명타자로만 활용할 수 있는 이미 30대가 된 선수다. 아마도 치열한 영입전이 펼쳐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변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다. 구단마다 수억 달러 적자를 안은 상황에서 이번 스토브리그 테마는 '가성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초특급 FA보다 중저가 FA에 관심이 쏠릴 수 있다는 얘기다. 현지 에이전트에게 빅리그 진출을 일임한 김하성과 나성범에게도 이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나성범은 빅리그 최대.최고 에이전시 보라스 코퍼레이션과 수 년 전부터 손을 잡았다. 지난겨울 보라스가 보여준 협상 전략이 올해도 적중한다면 나성범 또한 예상보다 나은 계약을 체결할지도 모른다.
시간이 많지는 않다. 포스팅 공시 후 한 달 내로 협상이 마무리되야 태평양을 건넌다. 김하성과 나성범이 본인들은 물론 한국 야구팬들에게도 빅리그 진출이라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안길지 관심이 모아진다.

윤세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