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두새벽부터 담요 덮고 기다려…"184번 전화해 한 차례 통화 성공"

접종 담당 의료진, 배포 지연에 성탄절 휴가 떠나버리기도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정윤섭 특파원 = 미국의 노인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맞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길게 줄을 선 채 노숙하는 장면이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미국의 백신 접종 체계가 아직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일부 주(州) 정부와 카운티 보건당국이 고령의 일반인 등을 대상으로 백신을 맞히기 시작하자 접종 희망자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이런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3일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미국 플로리다, 테네시, 텍사스주와 미국령 푸에르토리코 등지에서는 백신 접종을 둘러싸고 혼란과 진통이 빚어졌다.

플로리다주는 미국 주 정부 가운데 처음으로 65세 이상 일반인에게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겠다고 발표했고 선착순 접종도 가능하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그러자 백신 접종 장소는 순식간에 노인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플로리다에 거주하는 70대 노인 미나 바블은 지난달 30일 새벽 2시부터 포트 마이어스의 백신 접종 센터에서 남편과 함께 줄을 섰다고 NYT는 전했다.

이들 부부는 간식과 물을 준비했고, 교대로 승용차 안에서 잠을 청했다.

바블은 접종 센터에 도착하자 300여명이 이미 줄을 서 있었고, 8시간을 기다려 백신 접종을 마쳤다면서 "우리에게 그것은 모험이었다"고 말했다.

플로리다주 리 카운티는 백신 접종을 희망하는 노인들의 노숙 행렬이 빚어지자 "콘서트 관람객이나 블랙프라이데이 고객들이 기다리듯이 백신을 맞기 위해 야영을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테네시주 중남부의 소도시 털러호마에서는 지난 2일 노인들이 담요 속에 웅크린 채 줄을 선 장면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왔다.

보행기나 지팡이에 의지한 노인들은 야외에서 추위에 떨며 접종 센터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고, 일부는 아예 간이 의자를 들고 와 진을 쳤다.

백신 접종 예약 시스템이 무용지물이 되는 상황도 속출했다.

텍사스주 휴스턴시는 지난 2일 무료 백신 접종을 위한 예약 전화를 개통했지만, 25만통 이상의 전화가 폭주하며 시스템이 마비됐고 결국 방문 접수로 예약을 받아야만 했다.

실베스터 터너 휴스턴 시장은 브리핑에서 "예약 시스템이 (폭주하는 전화에) 정말로 압도당했다"고 말했다.

플로리다 주민 바버라 쇼빈(71)은 WP에 카운티 보건국과 현지 병원에 백신 접종을 문의하기 위해 무려 184 차례나 전화해 겨우 한 차례 통화에 성공했지만, 그마저도 원하는 정보를 얻지 못한 채 바로 끊어야만 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플로리다주 브라워드 카운티 등의 온라인 예약 사이트도 접속자가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먹통이 됐다.

이밖에 푸에르토리코에선 백신 배포가 지연되면서 접종을 담당할 의료진들이 크리스마스 휴가를 떠나버리는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NYT는 "접종 대상이 확대되면서 그 과정이 더욱 복잡해질 것이라는 경고가 이미 있었고, 그 경고가 옳았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며 "접종이 예상보다 많이 지연되면서 미국이 얼마나 빨리 코로나를 극복할지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jamin7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