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제법 위반 주장하며 주일한국대사 초치…"결코 받을 수 없다"

정부 "한일 건설적 협력 계속되도록 노력"…해법찾기는 쉽지 않아

(서울=연합뉴스) 김동현 기자 = 한국 법원이 8일(한국시간)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한일관계에 큰 파장이 예상된다.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 인정은 피해자와 다수 국민 입장에서 정의로운 판결이지만, 이미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 등으로 갈등이 깊은 한일관계에는 악영향일 수밖에 없다.

그나마 강제징용 배상 판결은 일본 기업이 피고여서 우회로를 찾으려는 양국 정부의 노력이 있었지만, 위안부 판결은 피고가 일본 정부여서 논의의 첫발을 떼기조차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 정부가 사법부의 판결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면서 위안부 문제를 일본과 외교적으로 풀 방법도 마땅치 않아 고민이 깊어질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김정곤 부장판사)는 8일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들에게 1인당 1억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법원에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여러 건 있으나, 이 중 판결이 선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 정부는 판결 직후 남관표 주일한국대사를 초치하며 즉각 반발했다.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일본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기자회견에서 한국의 국제법 위반을 주장하면서 "이런 판결이 나온 것은 매우 유감이다.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국제법상 국가는 다른 나라의 재판에서 피고가 되지 않는다는 '주권 면제' 원칙을 내세워 소송 참여를 거부한 채 원고 측 주장을 각하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게다가 일본은 박근혜 정부가 2015년 12월 발표한 한일 위안부 합의로 양국 간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합의는 문재인 정부 들어 피해자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이유 등으로 사실상 무효가 됐으며, 이후 일본 정부는 한국의 약속 위반을 주장하며 합의 이행을 촉구해왔다.

이렇게 한일 간 입장차가 큰 상황에서 배상 판결이 나오면서 양국의 간극은 더 좁혀지기 힘들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한일관계를 풀어나가기가 더 어려워졌다"며 "일본은 한일 위안부 합의로 다 끝났다는 입장이라 판결에 반발하면서 한국 정부에 책임지라고 강하게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파장 최소화를 위해 고심하는 분위기다.

외교부는 대변인 논평에서 "동 판결이 외교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검토해 한일 양국 간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협력이 계속될 수 있도록 제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또 "정부는 2015년 12월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합의가 양국 정부의 공식 합의라는 점을 상기한다"며 이 합의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이 될 수 없지만, 이번 판결로 폐기된 것 또한 아니라는 점을 부각했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예상되는 한일관계 악화를 막기 위해 정부가 취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일본이 판결 자체를 부정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사법부 판결을 존중한다는 원칙을 유지하면서 일본이 만족할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강제징용 문제 이상으로 엄청난 큰 파동이 올 텐데 한국 정부는 삼권분립을 존중할 수밖에 없어 곤란할 입장에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이 판결은 한일 양국이 상호 대사 교체를 발표한 날 나왔다.

이날 외교부는 주일본대사에 강창일 전 의원을 임명했고, 일본 정부도 아이보시 고이치 주이스라엘 대사를 새 주한대사로 발령했다.

이번 판결은 조 바이든 새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한미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미일 공조를 중요시하는 바이든 행정부 입장에서는 위안부 문제로 한일갈등이 임계치를 넘었다고 판단할 경우 한일관계 개선을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

blueke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