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 "미국, 책임자로 왕세자 공식 지목한다는 의미"

미국-사우디 관계악화 예고…"왕세자 미국 제재받을 수도"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새로 출범하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살해사건을 다룬 정보를 기밀에서 해제하기로 했다.

미국의 모든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DNI)의 국장으로 지명된 애브릴 헤인스는 19일(현지시간)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에서 열린 인준 청문회에서 이 같은 방침을 밝혔다.

헤인스 지명자는 카슈끄지 정보를 공개하겠느냐는 론 와이든(민주·오리건) 상원의원의 질문에 "법률을 준수해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고 답변했다.

미국 의회는 정보기관들이 카슈끄지를 살해한 자들과 살해를 지시하거나 공모한 자들과 관련한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조항을 국방수권법(국방예산법)에 담아 2020년 2월 의결했다.

그러나 정보기관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대 속에 위법 논란에도 카슈끄지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카슈끄지는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사우디 왕실을 비판한 반체제 인사다.

그는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사우디 영사관에서 2018년 10월 잔혹한 방식으로 살해됐으며 시신도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사우디 법원은 카슈끄지를 죽인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8명에게 징역 7∼20년형을 작년 9월에 확정했다. 이들 가운데는 사우디의 실세 왕자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최측근의 수하도 포함됐다.

그러나 무함마드 왕세자의 개입 의혹이 사법처리 과정에 다뤄지지 않아 꼬리 자르기식 봉합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미국 언론들은 미국 정보기관들이 무함마드 왕세자가 살해를 지시했다고 볼 가능성이 보통 이상으로 큰 것으로 분석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카타르 국영방송 알자지라는 카슈끄지 정보를 열람한 이들을 인용해 무함마드 왕세자가 카슈끄지 암살을 지시했다는 게 정보기관들의 결론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무함마드 왕세자와 왕실은 트럼프 대통령의 묵인 속에 미국 정보기관들이 비밀을 유지하는 동안 개입 의혹을 강력하게 부인해왔다.

사건 직후 미국 언론에서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살해의 배후로 무함마드 왕세자로 결론지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카슈끄지 정보의 공개는 미국이 무함마드 왕세자를 책임자로 공식 지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뜻한다고 해석했다.

카슈끄지 사건을 조사한 아그네스 칼라마드 유엔 특별보고관은 가디언 인터뷰에서 "사건에서 잃어버린, 필수적인 퍼즐 조각 하나가 나올 것"이라며 바이든 정부의 정보공개 방침을 반겼다.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안보 전문가인 브루스 리델은 "카슈끄지 살해의 책임과 관련한 의문을 바이든 행정부 초기에 공공 영역에 던져두는 것도 유용한 방안"이라고 가디언에 의견을 밝혔다.

카슈끄지 사건의 기밀 해제는 바이든 정부의 출범과 함께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정보 공개가 그 자체로 사우디 왕실에 타격일 수 있는 데다가 바이든 정부가 무함마드 왕세자를 제재할 가능성도 관측되고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무함마드 왕세자와 밀착했지만 바이든 당선인은 작년 대선운동 과정에서 무함마드 왕세자를 비판하며 사우디가 국제사회에서 버림받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가디언은 바이든 정부가 사우디에 무기판매를 차단하고 무함마드 왕세자를 표적으로 삼아 금융제재 같은 조처를 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jangj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