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시 등 동해안 지자체는 산불·가뭄 위험 고비 넘겨

(강릉=연합뉴스) 이해용 기자 = "봄이 오나 했더니 폭설이 내렸네요."

강원 산간 지역에 폭설이 내린 2일 오후 찾아간 강릉시 왕산면의 한 산골 마을.

주민 이명숙(64)씨는 지난 밤사이 쏟아진 집 주변의 눈을 한 삽조차 뜨지 못하고 서 있었다.

울창한 소나무 가지들은 폭설에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부러졌고, 진입로에 세워둔 차량 주변으로는 눈이 가득 쌓여 꼼짝할 수 없는 신세였다.

지인들이 시내로 나오라고 불렀지만, 폭설에 차량조차 꺼낼 수 없어 그냥 집에 있겠다고 했다.

그의 집 주변에 쌓인 폭설은 어림잡아 허벅지 가까이 빠질 정도였다.

특히 이번 눈은 습기가 많은 눈이어서 홀로 제설작업을 한다는 것은 엄두조차 내기 힘들었다.

이씨는 "봄이 오나 좋아했는데 폭설이 내리고 말았다"면서 "이 눈을 치우려면 엄두조차 나지 않아 녹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왕산면 송현리의 주민 김모(80)씨는 이날 오전 7시부터 종일 혼자 마당에 쌓인 눈과 씨름을 하다 지쳐 버렸다.

김씨는 아무리 눈이 많이 내리더라도 자신의 집으로 들어오는 길은 뚫어 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혼자 제설작업을 하고 나서는 방에 들어와 누웠다.

그는 "우체부가 세금 용지라도 갖다 놓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혼자 아침부터 눈을 치웠다"며 "눈이 많이 쏟아져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의 비닐하우스는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붕괴하는 등 강릉에서는 이번 폭설로 비닐하우스 8동이 무너진 것으로 알려졌다.

또 돼지를 키우는 강동면의 한 축사 지붕이 무너지는 등 축사 5동도 피해를 본 것으로 강릉시는 잠정 파악했다.

또 성산면 보광리 400여 가구가 정전돼 한전이 긴급 복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입학식을 맞아 처음 등교하는 초등학생과 학부모는 아침부터 폭설을 뚫고 학교에 가느라 안간힘을 썼다.

강릉시가 제설장비를 동원해 주요 버스 노선 등은 치웠지만 학교 주변의 길은 미처 치우지 못해 입학생 등은 빙판길에 첫날부터 조심조심 학교로 향했다.

기습 폭설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 백신 접종은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됐다.

시는 백신 접종 이틀째인 이날 350명이 접종을 마치는 등 모두 540명이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고 설명했다.

폭설로 불편을 겪은 주민과는 달리 산불과 가뭄으로 비상이 걸렸던 강릉시 등 동해안 자치단체들은 안도했다.

지난달 산불이 잇따라 발생하고, 식수원인 오봉저수지 저수율이 반 토막 났던 강릉시는 이번 폭설로 잠시 걱정을 덜게 됐다.

강릉시 관계자는 "그동안 건조해서 주말에 공무원들을 산불 위험 현장에 배치하는 등 걱정이 많았다"면서 "당분간 산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라고 반겼다.

dmz@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