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공물 봉납, 작년 9월 취임 후 2번째…참배는 하지 않을 듯

韓외교부 "日지도급 인사들, 과거사 겸허히 성찰하고 반성해야"

(도쿄 서울=연합뉴스) 박세진 이세원 특파원ㆍ김동현 기자 = 작년 9월 취임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신사의 춘계 예대제(例大祭·제사)에 공물을 바쳤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는 퇴임 후 3번째로 이 신사를 직접 참배했다.

스가 총리는 야스쿠니신사 올해 춘계 예대제 첫날인 21일 오전 '마사카키'(眞신<木+神>)라고 불리는 공물을 '내각총리대신 스가 요시히데'라는 이름으로 봉납했다.

이와 관련, 일본 정부 대변인인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장관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사인(私人)으로서의 행동이라서 정부 입장에선 코멘트할 게 없다"고 말했다.

마사카키는 신단이나 제단에 바치는 비쭈기나무(상록수의 일종)를 말한다.

스가 총리는 이날부터 22일까지 이틀간 열리는 이번 예대제에 직접 참배는 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스가 총리는 취임 후 처음으로 맞은 작년 10월 야스쿠니신사의 추계 예대제 때도 같은 공물을 봉납했다.

예대제는 봄과 가을에 치르는 큰 제사로, 야스쿠니신사의 연중행사 중 가장 중요한 의식으로 불린다.

스가 총리의 전임인 아베 전 총리는 제2차 집권을 시작한 이듬해인 2013년 12월 26일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뒤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의 강한 반발을 의식해 작년 9월까지의 재임 기간에 봄·가을 큰 제사와 8ㆍ15 패전일에 공물 봉납으로 직접 참배를 대신했다.

아베는 퇴임 후 사흘 뒤인 작년 9월 19일 야스쿠니신사를 직접 참배했다.

스가 총리가 취임 후 2번째로 맞은 야스쿠니신사의 예대제에 맞춰 참배를 보류하고 공물을 바친 것은 한국과 중국을 의식한 행보로 분석되고 있다.

하지만 야스쿠니신사에 공물을 바치는 것도 침략전쟁을 이끈 전범들을 추모하는 성격을 내포하는 것이어서 한국과 중국에선 문제로 보고 있다.

제2차 아베 정권에서 7년 8개월간 관방장관으로 있던 스가 총리는 2014년 2월 20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나도 관방장관이 되기 전에는 야스쿠니를 참배했지만 혼자서 조용하게 했다"고 발언했다.

관방장관 재직 중에는 참배를 하거나 관련 행사에 공물을 보내지 않았으나 총리가 된 후로는 전임자인 아베의 행보를 답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총리에서 물러난 뒤 작년 가을 예대제 때를 포함해 3번째로 이날 야스쿠니신사로 달려간 아베는 "나라를 위해 싸우고 고귀한 생명을 희생한 영령에 존숭(尊崇)의 뜻을 표하기 위해 참배했다"고 말했다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이날 스가 내각 인사로는 다무라 노리히사(田村憲久) 후생노동상과 이노우에 신지(井上信治) 엑스포담당상이 공물을 바쳤다.

이들 외에 자민당 소속 중·참의원인 와시오 에이이치로(鷲尾英一郎) 외무부대신, 에토 세이이치(衛藤晟一) 전 오키나와담당상, 아리무라 하루코(有村治子) 전 여성활약담당상 등이 개별적으로 참배했다.

초당파 의원 연맹인 '다 함께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은 애초 22일로 예정했던 집단 참배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상황을 고려해 작년과 마찬가지로 보류하고, 모임 회장인 오쓰지 히데히사(尾辻秀久) 전 참의원 부의장과 사무국장인 미즈오치 도시에이(水落敏榮) 참의원 의원이 대표로 참배키로 했다고 21일 오후 발표했다.

도쿄 지요다(千代田)구에 있는 야스쿠니신사는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일본에서 벌어진 내전과 일제가 일으킨 수많은 전쟁에서 사실상 일왕을 위해 숨진 246만6천여 명의 영령을 떠받드는 시설이다.

이 가운데 90%에 가까운 213만3천 위는 일제가 대동아(大東亞)전쟁이라고 불렀던 태평양전쟁(1941년 12월~1945년 8월)과 연관돼 있다.

일제 패망 후 도쿄 전범재판(극동국제군사재판)을 거쳐 교수형에 처해진 도조 히데키(東條英機·1884∼1948) 전 총리 등 7명과 무기금고형을 선고받고 옥사한 조선 총독 출신인 고이소 구니아키(小磯國昭·1880∼1950) 등 태평양전쟁을 이끌었던 A급 전범 14명도 1978년 합사(合祀) 의식을 거쳐 야스쿠니에 봉안됐다.

이 때문에 야스쿠니신사는 일본 우익 진영에는 '성소'(聖所)로 통하지만 일제 침략으로 고통을 겪었던 주변국 사람들에게는 '전쟁신사'로 각인돼 있다.

야스쿠니에는 일제의 군인이나 군속으로 징용됐다가 목숨을 잃은 조선인 출신 2만1천181위와 대만인 2만7천864위도 본인이나 유족의 뜻과 무관하게 봉안돼 됐다.

한국 외교부는 이날 대변인 논평을 통해 "정부는 일본의 식민침탈과 침략 전쟁을 미화하고 있는 야스쿠니신사에 일본 정부 및 의회 지도자들이 또다시 공물을 봉납하고, 참배를 되풀이한 것에 대해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 정부는 일본의 지도급 인사들이 역사를 직시하고, 과거사에 대한 겸허한 성찰과 진정한 반성을 행동으로 보여줄 것을 촉구하며, 일본은 이것이야말로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발전의 근간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parksj@yna.co.kr, sewon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