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A매치 전적 뒤지지만 올림픽은 '무패 행진'

오륜기 앞에서는 '멕시코 잡는 호랑이'로 군림한 한국 축구가 도쿄 땅에서도 기분 좋은 역사를 이어갈 것인가.
올림픽 축구 '김학범호'가 북중미의 강자 멕시코와 준결승 길목에서 격돌한다.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축구대표팀은 31일 오후 8시 요코하마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2020 도쿄올림픽 축구 남자 8강전에서 진검승부를 펼친다.

◇멕시코에 고전한 한국 축구, 올림픽팀은 다르다

한국 축구는 멕시코와 A대표팀간 맞대결에서는 역대 전적 4승2무8패로 열세를 면치 못했다. 3년 전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에서도 격돌했다. 한국의 손흥민이 후반 막판 환상적인 중거리포로 멕시코 골문을 갈랐지만 1-2로 졌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오스트리아에서 펼쳐진 친선경기에서도 황의조, 손흥민 등 주력 공격수가 모두 나섰으나 2-3으로 패했다.
하지만 올림픽팀 간의 역사는 다르다. 7전 3승 4무로 한 번도 지지 않았다. 특히 올림픽 본선에서만 5차례 맞붙었는데, 한국이 3승2무로 압도했다. 한국과 멕시코는 올림픽 본선 무대를 각각 11회, 12회째를 맞고 있다. 이번이 본선에서 여섯 번째 맞대결. 같은 팀끼리 올림픽 본선에서 상대한 횟수에서 한국-멕시코는 이탈리아-스페인과 더불어 공동 1위다. 
처음 만난 건 런던올림픽이 열린 1948년이다. 이 시기는 한국 축구 태동기와 다름이 없다. 그해 5월 국제축구연맹(FIFA)에 가입한 조선축구협회(현 대한축구협회)는 해방 이후 신탁통치 기간으로 어수선한 상황에도 두 달 뒤 올림픽 출전을 결정했다. 런던으로 향하는 교통수단이 제대로 돼 있던 시기가 아니었다. 
대표팀은 6월 21일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 요코하마를 거쳐 홍콩에 도착했다. 그리고 비행기에 올라 방콕과 바그다드 카이로 아테네 암스테르담을 차례로 거쳤다. 멕시코와 첫 경기를 나흘 앞둔 7월 29일이 돼서야 런던에 도착했는데, 어려운 여건에도 강한 정신력으로 5-3 승전고를 울렸다. 한국 축구 메이저 대회 사상 첫 승리였다.
U-23 규정이 도입된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 이후 한국은 '멕시코 천적'으로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 모두 조별리그에서 상대했다. 1996년 애틀랜타 대회에서 0-0으로 비겼고, 2004년 아테네 대회에서는 김정우의 중거리포로 1-0 승리했다. 
2012년 런던 대회에서는 또다시 0-0으로 비겼는데, 당시 멕시코는 대회에서 결승까지 올라 브라질을 누르고 사상 첫 금메달을 거머쥔 황금세대였다. 직전 대회였던 2016년 리우 대회에서는 현재 김학범호에 와일드카드로 합류한 권창훈이 왼발 결승골을 꽂으며 1-0으로 웃었다.

◇황의조vs오초아…와일드카드 '창과 방패' 겨루다

한국은 조별리그 뉴질랜드와 첫경기에서 0-1 충격패 했으나 이후 전술 변화와 조직력이 되살아나며 2연승했다. 루마니아와 온두라스를 상대로 각각 4골, 6골을 폭발시키며 오름세를 탔다. 특히 온두라스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황의조(보르도)의 부활은 '한 방이 필요한' 토너먼트 승부에서 가장 큰 힘이다. 그가 상대할 상대 수문장은 국내 팬에도 익히 알려진 베테랑 기에르모 오초아(클럽 아메리카)다. 
지난 2005년 12월 헝가리와 친선경기에서 A매치에 데뷔한 오초아는 16년째 대표 수문장으로 활약 중이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눈부신 선방쇼로 세계 팬의 이목을 집중하게 했다. 이어 2018 러시아 월드컵에도 출전했고 한국과 조별리그에서 겨뤘다. 황의조와 오초아는 지난해 오스트리아에서 치른 평가전 때 만났지만, 당시 오초아는 벤치를 지켰다. 황의조는 선제골을 넣으며 골 맛을 본 적이 있다. 이번에 올림픽 무대에서 '창과 방패'로 겨룬다.
다만 한국 나이로 서른일곱인 오초아도 반사신경이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조별리그 3경기에서 3실점 했다. 특히 한국과 메달 경쟁을 펼치는 일본과 두 번째 경기에서 2골을 내줬다. 일본의 선제골 상황은 참고할 만하다. 도안 리츠가 빠르게 멕시코 오른쪽 측면을 허물고 깔아준 패스를 구보 다케후사가 달려들어 반 템포 빠른 슛으로 마무리했다. 한국도 '스피드 레이서' 이동준을 앞세워 비교적 느린 멕시코 수비진을 허문 뒤 황의조가 송곳 같은 마무리로 득점을 기대해 볼 수 있다.
멕시코의 공격진은 확실히 경계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빠르고 아기자기한 공격 색채가 두드러진다. 남아공과 조별리그 최종전(3-0 승)에서 골 맛을 본 엔리 마르틴과 미드필더 루이스 로모가 전방과 2선의 척추 구실을 한다. 박지수를 축으로 한 한국 수비진이 어느 때보다 견고한 방패로 맞서야 한다.  

도쿄 | 김용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