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 경악케 한 아프간 탈출 대혼란…책임 규명은 이제부터

아프간 재건·난민 처리 문제 등 첩첩산중…美리더십 또다시 시험대

(서울=연합뉴스) 이윤영 기자 = 미국이 30일 '20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마침표를 찍으면서 아프간을 떠났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는 또 다른 전쟁의 서막이 펼쳐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물리적 전쟁은 종료됐어도 미국 역사에서 아프간 전쟁의 의의를 평가하는 후속 작업들과 함께 당장 미 정치권에서 막판 철수 과정에서 빚어진 극도의 혼란상을 놓고 책임론이 불붙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WP)도 이날 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에게 전쟁은 끝난 게 아니라 새롭고도 위험한 국면으로 다시 시작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탈레반의 갑작스러운 카불 점령 이후 미군 철군 완료까지 약 보름간 빚어진 혼란 사태는 미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게 됐다.

수많은 인파가 탈레반을 피해 탈출하려고 공항에 몰려들어 심지어 비행기 바퀴에까지 매달렸다가 추락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SNS 등을 통해 전세계에 생중계됐다.

미국이 버리고 떠난 군용차, 헬기 등에 탈레반 대원들이 의기양양하게 올라타고, 아수라장이 된 공항을 뒤로 한 채 마치 도망치듯 미군이 떠나버리는 장면은 '세계의 경찰'을 자처한 미국의 위상을 곱씹게 만들었다.

철수 시한 종료가 임박한 시점에서는 결국 미국이 최악의 시나리오로 설정했던 테러까지 발생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임기 시작 8개월 만에 최대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이란 인질 사건,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자는 연설로 후대에 기억되듯이 아프간 탈출 작전 또한 향후 바이든 대통령의 유산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CNN은 평했다.

그러면서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의 최장기 전쟁 종료 약속을 지킨 점에서는 평가받을 만한 부분도 있겠지만 철수 과정의 대혼란은 결국 대통령의 리더십과 위기 대처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일으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군 철수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앞으로 아프간 문제에서 아예 손을 뗄 수는 없다는 점에서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외교력, 동맹 간 리더십 등을 시험할 새로운 변곡점을 맞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향후 탈레반을 아프간의 정식 통치자로 인정할 것인지에서부터 탈레반이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정부 구성과 함께 인권을 존중하겠다는 약속을 얼마나 이행할 것인지, 만약 인권 유린이 자행된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등 미국을 계속 시험할 도전 과제들이 잇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남겨진 아프간인들에 대한 탈레반의 보복이 현실화할 경우 이들을 최종적으로 구출해내지 못한 미국에 대한 도의적 책임론과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 또한 높아질 수밖에 없다.

아프간이 결국 테러리스트들의 피난처로 전락한다면 한동안 잠잠했던 미국 본토에 대한 테러 공격 우려 또한 다시 부상할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 미국 역사에서 아프간 전쟁의 의미, 전쟁의 성패와 과오 등을 분석하는 작업도 뒤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역사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 당사자로서 심판대에 설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미 정치권도 철수 과정에서 빚어진 혼란의 책임을 규명하기 위한 청문회 개최 등 후속 검증 작업을 예고하고 있다.

당장 제기되는 의문은 ▲ 대통령과 미 정부는 왜 아프간의 급속한 몰락을 예상하지 못했는가 ▲ 예정된 철군 지휘에 왜 병력이 충분히 배치되지 못했는가 ▲ 왜 미군은 공항 보안을 적군인 탈레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가 ▲ 미 정부는 아프간 조력자들에 대한 특별이민 비자 발급 절차를 더 빨리 서두르지 않았는가 등이 될 것이라고 CNN은 지적했다.

공화당도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아프간 사태를 바이든 정부의 최대 실정 사례로 부각하려 하고 있다. 일부 공화 의원들은 바이든 대통령의 하야, 탄핵까지 거론중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도 책임 규명 차원에서 우선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경질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이 아프간으로 대피시킨 현지 조력자들을 미국에 어떻게 정착시킬지도 관건으로 남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아프간 난민을 수용한 데 대한 우려와 적대 여론이 공존하는 현실 속에서 미국은 '인도주의적 난민 위기'를 맞게 됐으며, 난민들 또한 미국에서 불투명한 미래를 마주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정치 컨설팅 업체 유라시아 그룹의 이안 브레머 회장은 WP에 9·11 테러 20주년이 되는 다음달 11일 아프간에서는 탈레반이 미군이 남기고 간 군사 장비를 들고 탈레반 깃발을 휘날리며 퍼레이드를 하는 상징적인 모습이 연출될 수 있다면서 "그들은 이길 수 있는 최대한으로 승리를 거뒀다"고 말했다.

y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