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중화항체 반응 강해야 중증 진행 막아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 저널 '사이언스 중개 의학'에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린 사람 가운데 중증이나 위중증으로 가는 경우는 많이 잡아도 20%를 넘지 않는다.

나머지 80%는 가벼운 증상을 보이다가 회복하는 게 일반적이다.

같은 바이러스에 감염됐는데 이렇게 위중도 차이를 보이는 건 개인별로 면역 반응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발표된 연구 결과를 보면 대체로 감염 초기의 면역 반응이 강해야 심각한 증상으로 가는 걸 피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코로나19 환자가 중증이나 위중증으로 갈지를 감염 초기에 예측하는 생물지표(biomarker)가 발견됐다.

감염 직후 혈액을 채취해 분석하면 약 80%의 정확도로 예측이 가능하다고 한다.

미국 스탠퍼드대 과학자들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18일(현지 시각) 저널 '사이언스 중개 의학'(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에 논문으로 실렸다.

논문의 공동 수석저자인 스탠퍼드 의대의 타이아 왱(Taia Wang) 감염병 미생물학 조교수는 "중증 코로나19는 폐 등에 과도한 염증이 생기는 질환"이라면서 "일부 감염자만 지나친 염증 반응을 보이는 이유를 밝혀내고자 했다"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스탠퍼드 대학병원에서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성인 178명의 혈액 샘플을 채취, 검사 당일과 28일 후에 각각 항체 수위 등을 분석했다.

처음엔 대부분 경증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15명은 응급 치료가 필요할 만큼 증상이 나빠졌다.

가벼운 증상을 보인 피험자의 다수는 감염 초기부터 건강한 수준의 중화 항체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병원에 입원한 중증 피험자는 감염 초기 항체 수치가 거의 감지되지 않을 만큼 낮았다.

이들 중증 환자는 감염증이 한참 진행되고 나서야 어느 정도 중화항체가 만들어졌다.

두 번째로 중요한 발견은, 보통 과학자들이 잘 들여다보지 않는 항체의 줄기(trunk) 부위에서 나왔다.

여러 유형의 면역세포는 항체의 줄기 부위와 결합하는 표면 수용체를 갖고 있다.

면역세포의 수용체는 각기 다른 항체 줄기의 당 분자를 구분해 얼마나 강하게 면역반응을 일으킬지 결정한다.

중증이나 위중증으로 가는 감염자는, 신종 코로나 식별 항체의 줄기를 감싼 당(糖) 사슬에 푸코스(fucose)가 다양하게 존재하지 않았다. 단당류에 속하는 푸코스(6-데옥시 갈락토스)는 화학 시약으로도 많이 쓰인다.

이런 푸코스 다양성 결여는 양성 판정을 받은 첫날에 채취한 혈액에서도 분명히 나타났다. 중증 진행의 결과가 아니라는 뜻이다.

항체의 줄기 부위는 다양한 종류의 당(糖) 분자 사슬로 싸여 있는데 그 구성에 따라 면역 복합체(immune complex)가 어느 정도 염증을 유발할지가 달라진다.

중증 환자의 면역세포는, 이런 푸코스 결핍 형 항체와 결합하는 CD16a 수용체 수위가 지나치게 높았다.

이 수용체는 면역세포의 염증 반응을 부추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수용체 수치가 높다는 건 염증 반응이 강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화이자의 mRNA 백신을 2차까지 맞은 성인의 경우 전반적으로 중화항체 수치와 항체의 푸코스 당 다양성이 높았다.

왱 교수는 "일정한 수준의 염증은 효과적인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라면서 "하지만 면역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초기에 막지 못한 감염자의 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광범위한 염증은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초기 면역 반응으로 충분한 중화항체가 생성되지 않은 환자가 바로 그런 경우라고 한다.

왱 교수팀은 푸코스 결핍 면역 복합체를 기도에 투여하고 4시간이 지나면 폐에 광범위한 면역 반응이 나타난다는 걸 유전자 조작 생쥐 실험에서 확인했다.

그러나 CD16a 수용체가 결핍된 유전자 조작 생쥐에 같은 실험을 했더니 폐의 과도한 염증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코로나19를 중증으로 끌고 갈 수 있는 면역학적 요인은 감염 초기의 부진한 중화항체 반응, 항체 결합 당 사슬의 낮은 푸코스 수위, 푸코스 결핍 항체 수용체의 과잉 발현 등 3가지로 요약된다.

이들 지표 하나하나가 코로나19 중증을 예측하는 능력은 높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세 개를 한꺼번에 쓰면 정확도를 약 80%까지 올릴 수 있다고 연구팀은 강조했다.

같은 맥락으로 면역세포의 CD16a 수용체가 많이 발현하거나 항체 당 사슬의 푸코스 당이 상대적으로 결여돼도 어느 하나만 갖고는 심한 염증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 감염자에게 이 두 가지가 겹친다면 파괴적인 염증이 폭주할 거라고 왱 교수는 경고했다.

che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