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격소총 수백만정 보급 속 '고질병 악화' 우려

"대형 총기사건, 주간행사로 자리잡아" 자조까지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미국에서 총기난사 참변을 피할 안전지대가 사라졌다는 두려움이 커진다.

최근 잇따라 발생한 대형 총기난사 사건을 보면 인종, 지역, 연령을 불문하는 추세가 관측된다.

올해 5월 14일 뉴욕주 버펄로에서 14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은 흑인이 주요 고객인 슈퍼마켓에서 발생했다.

같은 달 24일 텍사스주 유밸디에서 어린이 19명과 교사 2명이 살해된 사건의 장소는 히스패닉 노동계층이 많은 초등학교였다.

이달 4일 독립기념일 축제 행렬을 노린 총격으로 7명이 숨진 일리노이주 시카고 근처 하이랜드파크는 주민 90%가 백인인 지역이다.

미국에서는 총기난사 표적의 이 같은 다양성과 예측 불확실성에 경악하는 목소리가 크다.

낸시 로터링 하이랜드파크 시장은 5일 CBS 인터뷰에서 "뉴스에서 듣던 게 앞마당에서 터졌다"며 "진짜인지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 대규모 총격 사건에는 뚜렷한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게 중론이다.

범인이 정신적으로 명백히 불안정한 젊은 백인 남성이라는 점, 범행에 AR-15 스타일의 돌격소총이 사용됐다는 점이다.

수사당국의 발표를 보면 이들 특색은 느슨한 총기규제와 맞물려 참변으로 이어졌다.

버펄로 사건의 범인은 흑인 차별을 주장하는 18세 백인우월주의자 페이튼 젠드런이였다.

젠드런은 수개월 전부터 흑인을 겨냥한 범행을 기획하며 AR-15를 비롯한 여러 총기와 대량의 탄약을 준비했다.

유밸디에서 초등학교에 침투한 18세 범인 샐버도어 라모스의 경우 계획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총기를 살 수 있는 연령인 만 18세가 지나자마자 총기 2정과 탄약 수백 발을 샀다.

하이랜드파크의 용의자 로버트 크리모도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로 범행을 수주간 준비한 것으로 의심된다.

수사당국은 젠드런, 라모스와 마찬가지로 크리모도 AR-15를 합법적으로 샀다고 밝혔다.

AR-15는 애초 사냥이나 호신, 레저가 아닌 전쟁 때 군인을 살상할 무기로 개발됐다.

반자동 연사로 짧은 시간에 많은 총알을 발사할 수 있고 탄환의 위력도 커 맞으면 신체조직이 심하게 훼손된다.

총기 범행을 기획한 이들에게는 목표를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무기인 셈이다.

크리모는 옥상에서 독립기념일 행진이 이뤄지는 거리를 향해 불과 몇분 동안 70발을 난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버펄로 범인은 50여발, 유밸디 범인은 160여발을 사건 현장에서 난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은 AR-15와 같은 반자동 돌격소총을 1994년부터 금지했으나 해당 법률의 시행은 2004년 연장되지 않고 만료됐다.

그 뒤로 AR-15는 전국적으로 수백만정이 팔려 미국 내 총기난사의 단골이 돼버렸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미국 내에서 4만5천222명이 총기와 관련한 사건·사고로 숨졌다. 매일 124명이 총 때문에 죽는 셈이다.

현실을 외면해오던 미국은 버펄로, 유밸디 참사로 여론이 격분해 끓어오르자 지난달 총기규제를 한층 강화했다.

미성숙한 18∼21세 총기 구입자에 대한 신원조회와 정신건강 점검을 강화하고 위험하다고 판정된 인물의 총기를 일시 압류할 수 있도록 한 게 골자다.

그러나 대형 총기사건의 원흉으로 지목된 돌격소총과 대용량 탄창의 판매금지는 공화당 등 보수진영의 반대로 포함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 때문에 총기난사는 계속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자조의 목소리도 들린다.

J.B.프리츠커(민주) 일리노이 주지사는 총기난사를 미국의 고질적 병폐로 지목하며 "대형 총기사건이 일주일마다 치르는 전통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미국 의회에서는 총기규제를 추가로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계속 나온다.

다이앤 파인스타인(민주·캘리포니아) 연방 상원의원은 AFP 통신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에 전쟁무기가 너무 많다"며 "아무 데서나 대형 총격사건이 발생하도록 방치하는 게 수치스럽다"고 말했다.

jangj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