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의 주교 선출 보좌하는 주교부 위원에 여성 3명 임명

"교황, 교회 내 '올드보이 네트워크' 깨려는 시도"

(서울·로마=연합뉴스) 강진욱 기자 전성훈 특파원 =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전 세계 주교 선출 과정에 여성이 참여할 길이 열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 세계 주교 선출 업무를 보좌하는 교황청 주교부 위원직에 여성 3명을 포함해 총 14명을 새로 임명했다고 교황청이 13일(현지시간) 밝혔다.

이번에 주교부 위원직을 맡은 여성은 프란치스코 수녀회 소속으로 현 바티칸시국 사무총장인 라파엘라 페트리니, 프랑스인으로 살레시오 수녀회 의장을 지낸 이본 룅고아, 교황의 오랜 친구이자 세계가톨릭여성연합회(WUCWO) 회장인 마리아 리아 제르비노 등이다.

그동안 남성이 독점해온 주교부 위원회에 여성이 입성한 것은 처음이다.

가톨릭 교계제도에서 주교는 지역 단위 교회(교구)의 사목을 책임지는 고위 성직자다.

주교 임명권은 교황에게 있으며, 교황청 주교부에 설치된 위원회가 관련 실무를 지원한다.

자연스럽게 일선 교구 운영에 여성의 목소리가 더 많이 반영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에 발탁된 여성 가운데 제르비노의 경우 평신도로는 처음으로 주교부에 입성한 사례다.

또 페트리니는 작년 11월 여성으로는 사상 최초로 바티칸시국의 행정을 총괄하는 사무총장으로 임명돼 주목을 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즉위 이래 지속적으로 가톨릭교회 내 여성 참여 확대를 추진해왔다.

교황청 재정을 감독하는 위원회와 주요 부처 차관 등 무게감 있는 직책에 꾸준히 여성을 등용했다.

지난 3월에는 여성을 포함해 세례를 받은 가톨릭 평신도라면 누구라도 교황청의 행정 조직을 이끌 수 있도록 한 새로운 헌법을 발표하기도 했다. 여성도 교황청 최상위 행정조직의 수장이 될 수 있는 문을 활짝 열어놓은 것이다.

여성이 주교부의 문턱을 넘은 데 대해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을 움직이는 '올드보이 네트워크'를 해체하려고 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탈리아 일간 '라레푸블리카'의 교황청 전문가 파올로 로다리는 "교황은 늘 여성들과 함께 주교를 선발한다고 말해 왔다"며 "교회에서 남성이 전유해 온 공간 구석구석에 교황의 메시지가 전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교황은 여성을 사제로 임명하는 방안에는 단호하게 선을 긋고 있다.

여성의 사제 서품을 지지하는 민간단체 '여성서품회의'의 케이트 맥켈위 사무총장은 교황의 이번 인사를 환영하면서도 "여성은 절대로 임명될 수 없는 주교 선출 절차에 여성이 일정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에 새로 임명된 주교부 위원 14명 중에는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도 포함됐다.

대전교구장 출신인 유 추기경은 작년 8월부터 전 세계 사제·부제의 직무와 생활, 신학교 사제 양성 관련 업무 등을 관장하는 성직자부 장관으로 일해왔다.

kjw@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