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참배객 "A급 전범도 우리 조상…현재 일본은 그들 덕분"

무더위에도 이른 아침부터 '전범 참배' 긴 줄

(도쿄=연합뉴스) 박성진 특파원 = 한국의 광복절이자 일본엔 패전일인 15일 야스쿠니 신사가 있는 도쿄 지요다구는 아침부터 소란스러웠다.

일본 전범기(욱일기)가 곳곳에서 펄럭여 마치 시계를 80년 전으로 되돌린 듯했다.

2차 세계대전 때 일본 군복을 입은 이들이 욱일기 옆에 서 있고 욱일기와 일장기를 든 극우 무리가 신사 경내를 행진했다.

'종군 위안부·난징대학살, 망국 교과서 삭제하라'라고 적힌 현수막을 앞세운 채 행진하는 우익 무리를 제지하는 이는 없었다. 현수막을 든 10여명의 표정과 발걸음은 오히려 당당했다.

이들이 든 깃발에 적힌 '대동아전쟁은 침략 전쟁이 아니다', '기시다 총리는 8월 15일 야스쿠니를 공식 참배하라', '천황 폐하 만세' 등 구호는 그들의 생각이 어떤 것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우익들이 자신의 주장을 목소리 높여 외치면 주위에서 이를 지켜보던 참배객들은 손뼉을 치며 화답했다.

우익들의 주장에 호응하듯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각료들은 이날 야스쿠니신사에 공물료(料)를 내거나 참배했다.

기시다 총리는 야스쿠니신사에 '자민당 총재' 명의로 사비로 다마구시(玉串·비쭈기나무 가지에 흰 종이를 단 것) 대금을 봉납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전보장 담당상과 아키바 겐야 부흥상은 이날 오전 야스쿠니신사를 직접 방문해 참배했다.

경제산업상을 지낸 하기우다 고이치 집권 자민당 정무조사회장과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도 이날 참배했다.

이날 도쿄 날씨는 오전부터 30도에 이르는 무더위였지만 신사에는 일반 시민의 줄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신사 출입구에서 참배하는 신사 본당 앞까지 100m 넘게 이어진 줄은 시간이 지나도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이 든 이가 많았으나 가족과 젊은이 등도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이들은 땡볕 아래서 부채질을 하거나 머리에 수건을 얹은 채 더위를 견디며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딸과 함께 참배한 50대 남성은 2차 세계대전 A급 전범이 신사에 합사된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알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조상으로 현재 일본이 있는 것은 그들 덕분"이라고 대답했다.

한국과 중국 정부가 일본 각료의 신사 참배에 항의하는 것에 대해선 "국가 프로파간다(정치 선전)의 일환으로 아마 그들도 진심으로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일본과 화해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라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을 경영한다는 야마구치 슈고(79)씨도 한국과 중국의 반발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야마구치 씨는 "참배객 중 일본 제국주의의 향수가 있어서 오는 이는 1%도 안 될 것"이라며 "전쟁 시기에 자손 세대를 위해 희생한 이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온 것으로 한국과 중국이 주장하는 일본 제국주의 상징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야스쿠니신사에는 극동 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을 거쳐 교수형을 당한 도조 히데키(1884∼1948) 등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 14명을 포함한 태평양전쟁의 전사자들이 합사돼 있다. 이런 이유에서 야스쿠니는 이른바 '천황제'의 성지가 됐고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불린다.

신사 경내의 전쟁박물관 유슈칸에는 '자살 특공대'가 탔던 '영식함상전투기'(零式艦上戰鬪機, 일명 제로센) 등 제국주의 시절 무기도 전시됐다. 이곳 역시 관람객으로 넘쳐났다.

전범에 고개 숙여 참배하기로 한 일본 시민에게 역사에 대한 반성이나 일제 침략으로 고통받은 주변국과 희생자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를 찾는 일은 차라리 헛수고였다.

sungjin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