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에 쩍 갈라지는 하천·저수지 바닥…농업·수력발전·경제 차질

물 공급 규제 잇따르는 서방·인공강우 시도하는 중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지구촌이 올여름 전례 없는 가뭄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미국과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대륙을 가리지 않고 사상 최악 수준의 메마른 날씨가 이어지면서 에너지와 식량을 비롯한 경제 전반에 차질이 생겼다.

각국은 당장 물 공급을 줄이거나 반대로 인공 비를 조성하는 등 긴급 대책에 나섰다.

◇ 지구촌 동시다발 대가뭄…하천·저수지 '바닥'

미국은 서부 일대 중심으로 대가뭄이 닥쳤다. 미 국가통합가뭄정보시스템(NIDIS) 분석에 따르면 이달 9일 기준 미국의 약 42%가 가뭄을 겪고 있다.

프랑스는 지난달 강우량이 1959년 이후 63년 만의 최소치에 그쳤고, 영국은 올 3월부터 7월까지 5개월 연속 월간 강수량이 예년 수준을 밑돌았다. 영국 정부는 지난 12일 8개 지역을 공식 가뭄 지역으로 선포했다.

최근 영국과 프랑스에는 느닷없이 폭우가 내리기도 했지만 가뭄 해소에는 역부족일 것으로 관측된다. 단단히 메말라버린 땅에 빗물이 스며들지 못해 수해 우려만 커진 상황이다.

가뭄의 충격은 부쩍 쪼그라든 하천·저수지 수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영국 템스강, 독일 라인강, 이탈리아 포강, 프랑스 루아르강 등 유럽을 대표하는 하천은 수위가 낮아지다 못해 곳곳에서 바닥이 드러나고 있다.

미국 콜로라도강 수위는 최저 수준에 근접해졌고, 아시아에서 가장 긴 중국의 대표적인 젖줄 창장(양쯔강) 유역에서는 강우량이 예년의 절반 수준으로 줄면서 최저 수위를 기록 중이다.

◇ 건조한 날씨에 산불 커지고 농업·에너지·경제도 타격

낮아진 하천 수위는 경제에 직격탄이 된다.

독일 서부 라인강은 바지선 운송이 제한되면서 물류와 공장 생산에 비상이 걸렸다.

이탈리아는 70년 만의 최악으로 평가되는 가뭄을 겪으며 농업 생산량 3분의 1을 책임지는 포강 유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올리브유 최대 수출국인 스페인은 폭염과 가뭄이 계속된다면 올해 올리브 수확이 예년보다 크게 줄 것이라고 밝혔다.

전력 생산도 타격을 받고 있다. 가뭄으로 물이 부족해지면서 수력 발전에 기대는 도시는 전력 공급까지 차질이 생겼다. 무더위로 전력 수요는 늘고 있어 부담은 더 크다.

전력 생산 90%를 수력발전에 의존하던 노르웨이도 수력발전소 수위가 비정상적으로 낮아졌다. 수력발전으로 주변국에 전력을 수출까지 하던 나라지만 앞으로는 수출을 줄여야 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도 전력의 약 10%를 수력발전으로 생산했으나, 가뭄으로 댐 수위가 속절없이 내려가자 17일 가정과 기업에 전력 사용을 줄여달라고 호소하고 나섰다.

재난의 피해는 더 커졌다. 대형 산불은 빈번해지고 불길은 잡기 더 어려워지고 있다.

폭염과 가뭄에 시달리는 프랑스는 지롱드 등지에서 대형 산불과 사투를 벌이면서 인근 유럽국가에서 지원에 나서야 하는 형국이다.

◇ 각국 자구책 마련…물 사용 줄이거나 '어떻게든' 만들거나

각국은 서둘러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중국 중국중앙TV(CCTV)의 17일자 보도에 따르면 창장 유역에서 발생한 가뭄으로 6개 성에서 78만 명이 식수난을 겪고 농경지 118만㏊가 피해를 봤다. 이에 중국 수리부는 관개시설 확충, 수원 개발을 통해 농업용수 확보에 나서라고 긴급 지시했다.

영국 수도업체 템스 워터는 저수지 수위가 평시와 비교해 낮아지자 24일부터 야외에서 호스로 잔디 등에 물을 주지 못하게 하는 등 규제 방안을 내놨다.

미국 정부는 자국 7개 주가 의존하는 콜로라도강 수위가 급격히 낮아지자 네바다주와 애리조나주, 멕시코 북부에 단수 조처를 내린다고 발표했다.

중국 일부 지역에서는 인위적으로 비를 만드는 작업에 나섰다.

로켓으로 구름층에 화학물질을 쏘아올려 비를 인공적으로 만드는 기술인 인공강우를 활용하는 것인데, 구름이 부족한 일부 지역에서는 이를 하고 싶어도 가로막힌 상황이라고 BBC가 전했다.

◇ 아프리카는 식량 위기까지 가중…향후 가뭄 악화 '경보'

정책 역량이 부족한 아프리카에서는 가뭄은 사람 목숨까지 위협하는 위기다.

가뜩이나 강수량이 부족한 동아프리카 일대는 40여년만에 최악의 가뭄에 시달리면서 농업과 목축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았다.

최근 평년 강수량에 한참 못 미치는 '건조한 우기'가 전례 없이 이어지면서 식량 위기가 더욱 가중되고 있다.

내전을 치르는 에티오피아에서 가뭄으로 기근 위기가 심각해지자 반군이 인도적 지원을 도모하겠다며 휴전을 제의해올 정도다.

가뭄 문제는 세대를 거쳐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유엔 분석에 따르면 가뭄의 발생 빈도와 강도는 2000년 이후 큰 폭으로 악화했다. 1970∼2019년에 가뭄으로 인한 사망자 수만 65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가뭄 피해 악화는 결국 인간이 만든 기후변화의 영향이라는 분석이 중론이다. 기후 대응을 위한 노력이 없다면 앞으로의 전망도 어둡다.

유엔은 기후변화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강화되지 않으면 2050년에는 전 세계 인구 75%가 가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매년 최소 한 달 이상 물 부족에 시달리는 사람은 현재 36억명에서 2050년엔 약 48억∼57억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kit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