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라미란이 ‘정직한 주둥이’로 돌아왔다. 그는 지난 달 28일 개봉한 영화 ‘정직한 후보2’에서 재선을 노리는 강원도지사 주상숙으로 분해 관객의 배꼽사냥에 나섰다.

‘정직한 후보2’는 팬데믹 초창기였던 2020년 2월 개봉해 153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정직한 후보’의 속편이다. 라미란은 이 영화로 지난해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당시 그는 시상식에서 “내년에도 배꼽 도둑이 되겠다”는 수상소감을 밝히며 속편 제작을 약속했다. 배우 라미란의 ‘정직한 주둥이’가 약속을 지킨 셈이다.

“그 때 내가 왜 그랬을까. 겁 없이 2탄을 가자고 하다니.(웃음) 상을 안 주셨으면 그런 얘기를 안했을 텐데 정신이 없어서 말이 제멋대로 나왔다. 하하. 어쨌든 팬데믹이 시작할 때 1편이 개봉했고 엔데믹에 2편이 개봉하니 기분이 남다르긴 하다.”

2년만에 선보인 ‘정직한 후보2’는 서울시장 선거에 떨어진 3선 국회의원 주상숙이 고향에서 잠행하던 중 바다에 빠진 시민을 구한 걸 계기로 강원도지사에 당선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취임 후 의욕적으로 도정활동에 나선 주상숙은 어느덧 주변의 아첨에 취해 서서히 부패의 늪에 빠진다. 전시행정을 위해 복지예산을 깎거나 연임을 위해 건설규제를 풀어주는 모습은 영락없이 현실 정치인의 모습이 겹친다.

결국 그에게 돌아온 건 다시금 거짓말을 못하는 ‘정직한 주둥이’. 이번에는 1편부터 그를 보좌해온 믿음직스러운 비서실장 박희철(김무열)도 함께 ‘정직한 주둥이’를 얻으며 이야기가 한층 확장된다.

“일반인도 수많은 거짓말을 하니 정치인이라고 다르겠나. 그래도 정치인은 굵직한 일을 실행하고 많은 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쳐야 하니 그들의 거짓말에 혹독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2편의 변질된 주상숙은 일부 정치인의 모습을 빗대어 쓴 것 같다. 나도 흑화된 주상숙의 모습이 괴이하고 무섭기까지 했다. 다행히 김무열까지 쌍으로 거짓말을 못하게 되면서 고소하기도 하고 기댈 수 있는 기둥이 생겨 부담이 덜했다.”

실제로 영화는 개봉 후 김진태 강원지사가 SNS에 올린 글로 홍역을 치렀다. 김지사는 “영화는 강원도청 올로케여서 실감났고요, 거짓말을 못한다는 설정까지 딱 제 얘기다”라고 적었다. 이에 ‘정직한 후보’ 배급 담당자는 김지사의 글로 평점테러를 당했다며 항의의 글을 올리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대통령 앞에서 막춤 코믹연기? 단역부터 쌓은 실전의 힘!

지금은 주연급 여배우지만 라미란에게도 ‘미생’이던 시절이 있었다.

출산 후 경력이 단절된 시기, 집에서 모유수유를 하고 있을 때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몇 년 전 돌린 프로필을 본 제작진이 당일 오디션을 볼 수 있냐고 물어본 것이다. 당장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아이를 업고 남편과 함께 오디션을 보러 갔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였다.

이후 살아남기 위해 닥치는 대로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라미란은 “발동동 아줌마부터 시작해서 무조건 다 하겠다 했다. 오디션 성공확률이 90%에 이르게 됐다. 그때만 해도 제발 내가 많이 나오는 작품을 찍고 싶은 게 소원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영화 속에서 대통령 앞에서 막춤을 추는 라미란표 코믹 연기는 다양한 작품의 단역부터 조연까지 두루 거친 실전에서 비롯된 것이다.

욕망덩어리의 부패 정치인 주상숙을 코믹하게 표현한 것도 오롯이 라미란의 힘이다. 그는 “주상숙은 정치인이지만 마냥 미워할 수 없는, 연민을 자아내게 하는 인물이라 애착이 간다”며 “다만 나는 그렇게 살지도 못하고, 살고 싶지도 않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다보니 라미란 없는 주상숙은 상상하기 힘들다. 라미란은 “코믹 연기가 워낙 힘들다 보니 매력이 별로 없다. 나도 과하게 보일 수 있겠다 생각하면서도 감독님이 편집해주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막 연기하곤 한다. 주상숙으로 ‘정직한 후보’가 2편까지 왔으니 다른 인물로 바꾸긴 어려울 것 같고 내 대에서 끊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라미란은 올 하반기 스크린에서 가장 바쁜 여배우중 한 명이기도 하다. ‘정직한 후보2’와 비슷한 시기, 또다른 코믹 영화 ‘컴백홈’이 개봉했다. 11월에는 배우 정일우와 함께 출연한 영화 ‘고속도로 가족’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라미란은 “일희일비하지 않으려고 한다. 한 신을 나오든 백 신을 나오든, 열악한 현장이든, 부담스러운 현장이든 꾸준히 즐겁게 촬영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나도 첫사랑의 아이콘이 되지 않을까. 끝사랑도 좋을 것 같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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