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상대편 위축시키고 표현의 자유 억압하는 수단으로 이용"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미국 극우 진영이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총기소지 권리를 악용해 반대 측을 위협하고 토론을 가로막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 전역에서 공개적으로 총을 소지하는 것이 이제 더는 자기방어 차원의 행동이 아니며, 오히려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고 때로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억누르기 위한 수단이 돼 가고 있다는 것이다.

NYT는 한 예로 최근 중간선거 후 피닉스의 한 선거센터에 무장 시위자들이 몰려들어 공화당 주지사 후보가 선거에서 승리를 도둑맞았다며 근거 없는 비난을 퍼부은 사건을 들었다.

또 지난 10월에는 보수성향 의원들이 내슈빌에서 개최한 미성년자에 대한 트랜스젠더 치료 반대 집회에 '프라우드 보이즈'(Proud Boys)라는 단체의 회원들이 무장한 채 참여하기도 했다.

NYT가 전 세계의 정치적 폭력 사건을 추적하는 비영리 단체(Armed Conflict Location & Event Data Project)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0년 1월부터 지난주까지 무장한 사람들이 참여한 시위는 모두 700여 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들 시위 중 77% 이상에서 무장한 참가자들이 LGBTQ 및 낙태권 옹호, 인종 정의 집회에 대한 적대감을 나타내거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2020년 대선 부정선거 주장을 지지하는 언행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정부 무장조직이나 '프라우드 보이즈' 같은 우익 단체들은 이들 시위 대부분에 참석했다. 100개 이상의 행사에서 폭력 사태가 발생했고, 진보 활동가 등 반대편과 주먹다짐도 일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공화당 정치인들은 일반적으로 공개적인 총기 소지를 지지하는 반면, 민주당은 이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실제로 공화당 측 인사들은 32개 시위에서 무장 참여자 편에 섰으며, 민주당 측은 단 2개 시위에서만 무장 참여자 측과 함께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위에 무장하고 참여하는 것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가끔 볼 수 있는 모습이었지만 그 빈도는 2020년에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NYT는 전했다.

코로나19 방역에 대한 보수 진영의 반발과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과 폭력시위 등이 이어지면서 총기 소지자의 시위 참여가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총기 공개 소지가 허용된 일부 주에서 이제 시위 현장에서 총기 소지자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총기 권리 옹호자들은 시위에서 총기를 금지하는 것은 자기방어를 위해 총기를 소지할 수 있도록 한 미국 헌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회단체 '미국 총기 소유자들'(GOA)의 조던 스타인 대변인은 "시위가 폭동으로 변질할 때에 대비해 사람들은 자기를 보호할 수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당방위를 넘어 표현의 자유와 총기 소지 권리는 '기본 원칙'이라며 "미국인들은 교회에 가든 평화적 집회에 가든 수정헌법 1조 권리(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면서 무기를 소지(수정헌법 2조 권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총기 소지 반대 측은 정당방위가 전혀 필요하지 않은 공공집회에서 공개적으로 총기를 갖고 다니는 것은 반대편의 활동을 위축시키거나 의견을 억압하는 부작용을 일으킨다고 지적한다.

애덤 시어링 조지타운대 교수는 코로나 방역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펴기 위해 총기를 사용했을 때 표현의 자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했다며, 일부 주에서는 무장한 사람들 때문에 장애인 권리 옹호자나 마스크 의무 지지자들이 시위 참가를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말 충격적인 것은 총기가 정치적인 주장을 펴기 위한 일종의 상징이 됐다는 것"이라며 "그것은 순전히 협박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scitec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