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 미국이 죄수 교환을 통해 러시아에 수감됐던 여자 농구선수를 귀환시킨 것을 두고 러시아의 전략적 승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마약 혐의로 투옥 중인 농구선수를 데려오기 위해 러시아에 내준 인물이 '죽음의 상인'이라는 별명이 붙은 악명높은 글로벌 무기상이기 때문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8일 프로농구 선수 브리트니 그라이너와 러시아 무기상 빅토르 부트의 교환에 대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끌고 가는 방식과 닮았다"고 평론했다.

일단 먼저 고통을 주고 협상에서 원하는 것을 얻어낸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오랫동안 빅토르 부트를 돌려받기 위해 노력해 왔으나 성사시키지 못하다 올해 2월 그라이너를 체포하면서 기회를 잡았다.

러시아는 그라이너의 처벌 과정을 일일이 공개하면서 미국인의 애를 태웠고, 이를 통해 협상을 주도하면서 무기상 부트의 석방을 얻어냈다.

부트는 아프가니스탄과 아프리카 등 분쟁지역의 무기 밀매에 깊숙이 관여한 인물로 2008년 태국에서 체포돼 지금껏 미국 감옥에 수감됐다.

이번 죄수 교환에 대해 적잖은 미국인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악명 높은 무기상을 너무 쉽게 풀어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미국은 그라이너 외에 러시아에 수감 중인 기업 보안 전문가 폴 휠런도 빼내 오려 했지만 성사시키지 못했다.

러시아의 친러파 의원인 마리아 부티나는 텔레그램에 "러시아가 협상에서 우위를 점한 것"이라고 환영했다.

이는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어가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고 NYT는 지적했다.

우크라이나인들의 항전 의지를 꺾기 위해 발전시설을 집중적으로 타격해 전기와 난방 등을 끊는 전략도 브리트니를 인질 삼아 부트를 빼낸 협상술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돕는 유럽 국가들에 대해서도 천연가스 수출을 막는 등의 방식으로 괴롭히며 지치게 만들려 하는 것도 일종의 '일단 때리고 협상한다'는 전략과 닮았다.

푸틴 대통령은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전이 될 것이라고 얘기했는데, 이같이 우크라이나와 서방국들을 지속적으로 괴롭혀 결국 협상을 통해 원하는 바를 성취하려 할 것이라고 NYT는 분석했다.

푸틴 대통령은 전쟁에서 계속 밀리고 있지만 이번 죄수 교환을 통해 여전히 서방에 대적하는 협상가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 국무부 관료 출신으로 현재 싱크탱크인 유럽외교관계위원회에 있는 레제미 샤피로는 "러시아의 협상 스타일은 먼저 얼굴을 한대 때리고 협상하고 싶냐고 묻는 식"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번 협상 결과가 푸틴 대통령이 또 다른 인질극을 벌이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새롭게 인질을 잡고는 고통을 주고, 또다른 양보를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망명한 러시아 출신 언론인 안드레이 솔다토프는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농구선수를 무기상과 교환한 미국 정부의 이번 결정은 선례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러시아가 끝내 자국 송환을 이뤄낸 무기상 부트의 러시아 정부 연관설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러시아는 지금까지 부트와 연관성을 줄기차게 부인해 왔지만,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인 푸틴 대통령이 이토록 끝까지 그를 챙기는 모습은 결국 부트가 러시아 정부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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