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복싱협회는 선수를 보호하고 변화할 생각 없다. 이젠 기대도 안 한다."
2024 파리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여자 복싱 역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된 임애지(26ㄱ화순군청·사진)는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임애지를 만난 건 지난 20일 제106회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 복싱 경기가 열린 부산 벡스코 제2전시장이다. 그는 여전히 답보 상태에 있는 국내 대회 체급 세분화와 관련해 "내가 은퇴할 때까지 변하지 않을 것 같다"며 복싱협회 행정을 비판했다. 1980년대 커다란 인기를 누린 복싱은 시대 변화에 따르지 못하고 각종 내홍을 겪으며 추락의 길을 걸었다. 그럼에도 진흙 속의 연꽃처럼 신종훈, 오연지, 임애지 등 국제 경쟁력을 지닌 선수가 등장하며 희망을 안겼다.
그러나 이들을 기점으로 더 나은 미래 행정은 보이지 않는다. 임애지는 파리올림픽 이후 절규했다. 세계적인 선수로 더욱더 거듭나는 데 장애물로 여긴 게 국내 환경이다. 여자 복싱은 전국체전 등 국내 대회 체급이 올림픽, 세계선수권 체급과 다르다. 여자 일반부는 현재 세 체급(51㎏급ㄱ60㎏급ㄱ75㎏급)이다. 임애지가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낸 54㎏급은 없다. 전국체전에서 60㎏급으로 올려 뛴다. 이 체급 '1인자' 오연지에게 밀려 빛을 보지 못한다. 이번 전국체전에서도 60㎏급에 출전해 22일 열린 오연지와 결승전을 치렀는데 0-5 판정패했다. 오연지는 13연패를 차지했다. 그에게도 씁쓸한 현실이다.
복싱계에서 체급 논란이 꾸준히 일었다. 최소한 '국제 기준'에 맞는 체급 환경을 둬야 인재 풀이 커지고 복싱 부활을 그린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올림픽 여자 복싱만 해도 7체급이다. 2년 전 전국체전을 앞두고 복싱 시도협회장은 이기흥 전 대한체육회장과 만난 자리에서 여자 체급을 늘려달라고 호소했다. 체육회 측은 '등록 선수 부족'을 언급했고, 복싱협회의 미온적인 태도도 따랐다. 다수 복싱인은 "뼈대(체급)가 갖춰져야 살(선수)이 붙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임애지도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않는 격이다. 나도 7년 만에 국제 대회 메달을 땄다. 국내에 좋은 자원이 많다. 미래를 바라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또 "(협회에서) 언론에 떠밀리듯 내 체급만 신설하려고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속상하다."라고 했다.
선수 보호 차원에서도 체급 개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임애지는  "나이가 들수록 어렵다. 은퇴 이후 여성으로 기능을 잘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이렇게까지 복싱해야 하나'라는 자괴감이 든다"고 했다.

김용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