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첫 경험’의 순간은 강렬하다. 전에 없던 숨 막히는 긴장과 감정들이 온 몸을 삼킨다. 모든 이들이 지켜보는 첫 발걸음은 더 그렇다. 온 국민의 관심을 등에 지고 머나먼 이국에서 경험하는 첫 순간의 감정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미국 메이저리그(ML)에 진출한 한국야구사의 큰별들은 누구나 이런 첫 경험을 거쳤다. 박찬호는 1994년 4월 9일(한국시간)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애틀랜타와의 홈경기에서 첫 경험을 했다. 첫 상대는 상대팀 4번 타자 프레드 맥그리프였다. 첫 공은 볼이었다. 두 번째 공도 볼, 세 번째 공도 볼이었다. 박찬호는 네 번째 공 만에 겨우 스트라이크 존 안에 공을 집어넣었다. 맥그리프와의 맞대결 결과는 볼넷이었다.

한국 스포츠 사상 가장 많은 연봉을 받고 있는 텍사스 추신수에게도 첫 경험이 있었다. 2005년 4월 22일, 그는 시애틀 매리너스의 루키로 세이프코필드에서 열린 오클랜드와의 경기를 통해 첫 발을 내디뎠다. 0-3으로 뒤진 9회말 2사 1루에서 대타로 출전했는데, 상대팀 마무리 옥타비오 도텔과 맞대결을 펼쳤다. 추신수가 처음 본 공은 몸쪽 볼이었다. 그는 두 번째 공에 스윙을 해 1루 땅볼로 첫 타석을 마감했다. 

괴물에게도 첫 경험은 낯설었다. LA 다저스 류현진은 2013년 4월 3일 익숙하지 않은 풍경을 선사했다. 그는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전에 선발 출전해 빅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1회 선두타자 앙헬 파간이 첫 상대였다. 국내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류현진도 초구를 스트라이크 존 안에 넣지 못했다. 143㎞ 직구였는데, 낮게 들어갔다. 류현진은 2구째 직구를 통타 당해 중전안타를 내줬다.

피츠버그 강정호는 지난해 4월 9일 오하이오 신시내티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에서 열린 신시내티와의 원정경기 8회 1사서 대타로 첫 걸음마를 땠다. 강정호는 상대팀 점보 디아즈와 상대했는데 그가 처음으로 본 공 역시 볼이었다. 156㎞ 바깥쪽 직구였다. 그는 2구째 몸쪽 직구를 쳐서 3루 땅볼로 물러났다. 한국 출신 첫 ML타자 최희섭의 출발도 소박했다. 그는 2002년 9월 빅리그에 첫 발을 내디뎠는데 그는 첫 2경기에서 모두 대수비로 출전해 타석에 들어설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ML을 호령했거나 호령하고 있는 대다수 한국 출신 빅리거들 조차 첫 경험은 투박했고 엉성했다.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넣지 못했고, 엉뚱한 공에 스윙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과 경험은 그들을 성장하게 만들었고 자신감을 끌어올렸다. 

미네소타 박병호와 볼티모어 김현수 처럼 이번에 첫 경험을 앞둔 선수들도 있다. 두 선수의 첫 경험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펼쳐진다. 미네소타와 볼티모어는 4월 5일 볼티모어 오리올파크에서 개막전을 펼친다. 두 선수가 모두 선발 출전한다면 박병호의 첫 경험 상대는 크리스 틸먼, 김현수의 첫 맞대결 상대는 필 휴즈가 될 가능성이 높다. 

보통 홈개막전에는 에이스 투수가 등판한다. 볼티모어는 에이스 천웨인이 마이애미로 이적한 가운데 뚜렷한 에이스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 시즌 나란히 10승 이상을 기록한 우발도 히메네스와 크리스 틸먼이 개막전 선발 후보다. 히메네스는 지난 해 미네소타를 상대로 3할대 피안타율을 기록하는 등 약한 모습을 보였지만, 틸먼은 1할대 피안타율을 기록하며 극강의 성적을 거뒀다. 그래서 박병호의 첫 맞대결 상대는 틸먼이 유력하다. 

보통 원정경기를 개막전으로 치르는 팀들은 에이스 투수 등판을 홈 개막전에 맞추지만 홈 개막전 일정에 따라 일정을 변동하기도 한다. 미네소타는 개막 후 일주일 동안 원정경기만 치르기 때문에 개막전을 원정경기로 치른다고 해서 에이스를 아낄 이유는 없다. 미네소타의 에이스는 휴즈다. 지난 시즌 11승 9패 방어율 4.40을 기록하며 주춤했지만 2014년엔 팀 내 유일하게 200이닝 이상을 기록하는 등 막강한 모습을 보였다. 휴즈가 김현수의 첫 경험 상대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틸먼이나 휴즈 모두 팀에서는 에이스로 통하지만 리그 전체로보면 톱클래스에 있는 투수는 아니라는 점은 박병호와 김현수에게 긍정적인 요소다. 그러나 큰 기대는 금물이다. 선구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박병호와 김현수의 첫 경험도 엉성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선수의 첫 발걸음은 앞으로 펼쳐질 기나긴 여정을 알리는 신호탄으로서 길이길이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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