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격기계' 김현수(29)가 빅리그 도전의 꿈을 접고 LG와 계약을 맺으면서 KBO리그 출신 한국인 메이저리거 야수가 사라졌다. 가장 안정적인 연착륙으로 성공시대를 이끌 것으로 보였던 강정호는 피츠버그와 계약기간이 남아있지만 음주파문으로 사실상 재입성이 어려워졌다. 메이저리그에서 풀타임 활약 중인 한국인 야수 빅리거는 추신수(35.텍사스) 한 명만 남았다.

올겨울 KBO리그 스토브리그는 이른바 '유턴파'들이 펼쳐나갈 새 시즌에 대한 기대로 가득찼다. 박병호(넥센)와 황재균(kt), 김현수(LG)와 올해 복귀시즌을 치른 이대호(롯데) 등이 단일리그에서 화력경쟁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흥미를 자극한다. 한편으로는 한국 최고로 손꼽히던 야수들이 꿈의 무대에서는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는 씁쓸함이 남는다. 수 년째 이어오던 타고투저 현상에 상당 부분 거품이 끼어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돌아온 셈이다.

유턴파 모두 공정한 경쟁 기회가 없어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항변할 수 있지만 철저한 비즈니스 세계인 ML식 선수 운용 방식을 고려하면 태평양을 건널 때부터 예상됐던 일이다. 한 가지 이상 뚜렷한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해 한국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백업의 백업 신세로 전락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훨씬 더 많은 땀을 흘리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철저한 준비나 장거리 이동과 시차 등에 적응되지 않은 준비부족도 이들의 실패를 앞당겼다는 지적도 있다. 막연한 도전의식만으로 풀타임 빅리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한국에서는 검증된 선수들이라 거액을 받고 돌아왔지만 이들의 도전 자체에 박수를 보내기 어려운 이유다.

추신수의 존재감이 빛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산고를 졸업하고 혈혈단신으로 태평양을 건넌 추신수는 루키리그부터 단계를 밟아 2005년 4월 22일 시애틀에서 데뷔했다. 이후 3시즌 동안 메이저와 마이너리그를 오가며 가능성을 검증받은 뒤 클리블랜드 시절인 2008년부터 기회를 잡기 시작했다. 일본의 '타격천재' 스즈키 이치로의 그늘에 가려있을 때에도 추신수는 포기 대신 훈련을 택했다. 그는 과거 스포츠서울과 인터뷰에서 "메이저리그는 전 세계에서 야구를 잘 하는 선수들 중에서도 가장 잘하는 선수들이 뛰는 무대다. 적당히 해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 막상 빅리그에 올라오면 다 같은 야구선수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각자 보이지 않는 노력을 얼마나 많이 했겠는가. 나는 핸디캡이 많았기 때문에 훈련 말고는 보완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돌아봤다. 시즌 때는 물론 스프링캠프 때도 훈련시작 3시간 전에 나와 개인훈련을 충분히 한 뒤 공식 훈련에 참가할 정도였다.

유일한 한국인 메이저리그 야수라는 자부심과 일찍 꾸린 가정은 추신수에게 사명감을 선물했다. 그는 "내가 여기서 무너지면 한국야구가, 내 가족이 함께 무너진다는 책임감이 있다"고 강조했다. 절차를 밟지 않고 자신을 찾은 일부 취재진과 마찰을 겪은 이유도 "한국인들은 원래 다 제 멋대로냐"는 다른 나라 선수들의 비아냥을 듣고 싶지 않아서였다. 어릴 때부터 몸에 밴 물러설 곳에 없다는 절박함이 그를 훈련벌레로 만들었고 성공가도에 올라선 뒤에는 '후배들을 위해 길을 닦아야 한다'는 사명감이 최고의 위치를 지키게 만든 동력이 됐다.

따지고보면 최근 10년간 빅리그에서 풀타임 활약한 이는 추신수 한 명 뿐이다. 수 많은 선수들이 '추신수처럼…'을 가슴에 품고 태평양을 건넜지만 벽을 넘지 못하고 돌아섰다. 어쩌면 '사명감'이 결여된 게 가장 큰 실패원인이 아니었을까. 새삼 추신수가 흘린 땀이 돋보이는 한국의 스토브리그다.

장강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