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일정을 이겨내며 6년 만에 규정이닝을 통과했다. 지난해 포스트 시즌 1차전 등판, 올해 개막전 등판과 평균자책점 1위 만큼이나 의미있는 기록이다. 시즌 막바지 예상치 못했던 슬럼프를 겪었지만 이를 통해 앞으로 자신의 몸 상태를 보다 철저히 체크하고 관리법을 터득한다면 롱런의 지름길이 열린다.
LA 다저스의 류현진(32)에게는 여러모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지난 14일 뉴욕 메츠전 선발 등판이었다. 이날 류현진은 열흘 만에 다시 마운드에 올라 90개의 공을 던지며 7이닝 2피안타 6탈삼진 0볼넷 무실점으로 슬럼프 탈출에 성공했다. 투구시 무너졌던 하체 밸런스가 정상궤도에 올랐고 그러면서 체인지업을 비롯한 네 가지 구종의 제구도 안정됐다. 류현진 특유의 다양한 구종을 스트라이크존 상하좌우에 마음껏 꽂아넣는 특급 제구력이 되살아나면서 파워피처 제이콥 디그롬과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투수전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류현진은 올 시즌 168.2이닝을 기록하며 2013시즌(192이닝) 이후 처음으로 규정이닝(162이닝)을 돌파했다. 30대 초반 투수가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어깨수술을 이겨내고 다시 규정이닝을 소화한 것이다.
이는 올 시즌 후 프리에이전트(FA)가 되는 류현진 입장에서 크게 어필할 수 있는 포인트다. FA 계약을 추진하는 모든 구단들은 선수의 성실함과 자기관리를 기량 만큼이나 중요하게 본다. 재능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는 무대인 만큼 FA 영입을 진행하는 데 앞서 어떠한 루틴을 갖고 있으며 얼마나 철저하게 루틴을 따르는지 체크한다.
지난 14일 류현진과 맞붙은 디그롬의 경우 오후 7시 10분 경기 기준으로 오후 2시 30분부터 마운드에 오르는 순간까지 분 단위로 루틴을 설정해 움직인다. 지나치나 싶을 정도로 자신의 모든 워밍업 프로그램을 세밀하게 설정하고 이에 따라 경기를 준비한다. 디그롬은 올 시즌을 앞두고 메츠와 5년 1억3750만 달러 연장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다소 늦게 빅리그 무대에 올라고 마이너리거 시절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 경력이 있지만 메츠는 디그롬의 성실함을 믿고 2024시즌까지 디그롬과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반대의 경우도 많다. 2013년 8월 13일 다저스타디움에서 류현진과 맞대결을 벌였던 메츠 에이스 맷 하비는 방탕한 생활과 자기관리 실패로 무너지고 있다. 당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투수 톰 시버와 비견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2016년부터 급격히 하향곡선을 그렸고 지난해에는 팀 규정까지 어기며 메츠에서 트레이드됐다. 올 시즌을 앞두고 LA 에인절스와 2년 FA 계약을 맺었지만 부진 끝에 지난 7월 21일 에인절스로부터 방출통보를 받았다. 100마일을 던지는 올스타 선발투수도 자신을 통제하고 철저히 관리하지 않으면 한 순간에 바닥으로 추락하는 무대가 메이저리그다.
2015년 어깨 수술을 받았을 당시 류현진은 사형선고를 받는 기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난을 이겨내며 관리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자신 만의 루틴도 생겼다. 무엇보다 수술 후 4년이 지난 올해 최소 목표로 삼았던 완주까지 이뤄냈고 처음 맞이한 4연속경기 슬럼프도 이겨내고 있다. 류현진에게 2019시즌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얻은 해가 될 것이다.

윤세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