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낸시랭의 다음 개인전도 기대된다'라는 마음을 갖게 하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낸시랭이 지난 12월 2019 마이애미 아트페어(Context Art Miami)를 성황리에 마치고 돌아왔다. 현지 반응이 뜨거워 너무나도 행복했다는 그에게선 특유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작업실에서 그의 새 작품 '터부요기니-스칼렛'을 볼 수 있었다. 오일페인팅으로 작업한 만개한 꽃과 차가운 느낌의 기계들. "여성성을 상징하는 꽃들의 오가닉(Organic) 이미지들과 메카닉(Mechanic) 이미지들이 보이죠? " 그는 차분하게 그림에 관해 설명했다.

'걸어 다니는 팝아트'라고 불리며 방송가를 사로잡았던 낸시랭.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초대받지 못한 꿈과 갈등-터부요기니'(Uninvited Dreams and Conflict- Taboo Yogini)라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코코샤넬'이라는 고양이 인형을 어깨에 걸치고 아나운서 앞에서도 "큐티 섹시 키티 낸시 앙"을 외치는 발칙한 젊은 여성 아티스트, "낸시랭 자체가 작품이에요"라고 외치는 그의 등장은 그야말로 센세이션이었다.

그리고 2018년, 그에게 무거운 꼬리표가 따라붙게 된다. 사기 결혼, 가정 폭력 등 자극적인 단어와 함께 연일 검색어를 오르내렸던 그. 시간이 흐르며 대중의 관심은 사그라들었지만 낸시랭에게 새겨진 주홍글씨는 그대로 남았다.

낸시랭은 일련의 상처를 토대로 '스칼렛' 시리즈를 탄생시켰다. 여전사를 연상시키는 차림으로 만개한 꽃에 펌핑건으로 물감을 자유롭게 뿌리는 퍼포먼스 '스칼렛'은 싱가포르, 이스탄불, 마이애미에서 전세계 여성들이 겪고 있는 불합리한 고통에 질문을 던졌다.

그는 지난 5월 유튜브 채널 '낸시랭의 모이라 TV'를 개설했다. 그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 버팀목이 되었던 영화 프로듀서 황윤정과 김지선 변호사와 의기투합한 것. 왕언니들이 인생의 선배로서 연애와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콘셉트로 구독자들의 고민을 나누며 소통하고 있다.

아티스트로 멋진 한 해를 보낸 낸시랭을 경기도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새 작품과 유튜브, 낸시랭의 앞으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Q.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지난 12월 2019 마이애미 아트페어에 초대작가로 새로운 페인팅들과 퍼포먼스 '스칼렛 마이애미'를 펼치고 왔어요. 7월엔 싱가포르 글로벌 아트페어(Global art fair Singapore)에서, 9월엔 컨템퍼러리 이스탄불 아트페어(Contemporary Istanbu)에서 신작 페인팅과 퍼포먼스를 선보였죠. 반응도 아주 좋았고 작품도 성황리에 컬렉팅되었습니다.

Q. 신작 '스칼렛' 시리즈는 어떤 작품인가요?

스칼렛은 롤랑 조페 감독의 영화 '주홍글씨'의 주인공이에요. 여성으로서 불합리한 고통을 당하고 낙인찍히죠. 개인적인 일을 겪으며 이것에 대해 깊게 고민했고 이런 문제의식을 '스칼렛'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어요. 퍼포먼스 '스칼렛'은 '터부요기니-스칼렛' 바닥에 펼쳐지며 시작돼요. 여성성을 상징하는 화려한 꽃, 오가닉(Organic) 이미지가 가득 찬 캔버스를 메카닉(Mechanic)인 총으로 가격하죠. 마치 배설하듯 자유롭게 아크릴 물감을 뿌려대고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해요. 남성성에 짓밟히는 맥락을 표현하기 위해 대체로 남자 관객들을 참여시켰어요.

남자들이 죄인이라는 것이 아니에요. 제게 이 내용이 꼭 고통스럽고 슬프기만 하지도 않고요. 그저 '스칼렛'이라는 작품을 통해 여성들이 겪는 고통과 낙인, SNS 발달에 따른 사회적 살인 등을 생각해보게 하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어요.

Q. 현장 반응이 아주 뜨거웠다고요?

특히 마이애미에서 스칼렛은 슈퍼스타였어요. 많은 갤러리스트와 디렉터 분들이 큰 관심과 사랑을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했죠. 전시를 감상하고 있는데 어떤 할머니께서 스칼렛이라며 저를 부르곤 사진을 찍더라니까요.

아, 황당한 일도 있었어요. 갤러리 대표님이 작품 컬렉팅을 원해 통역 겸 마이애미 바젤 VIP 전시회를 보러 갔는데 관계자가 저를 저지하며 저에게 여기서 퍼포먼스를 하면 안된다, 사람들이 너와 사진을 찍어선 안된다고 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자꾸 저와 사진을 찍는데 제가 할리우드 스타가 아니었나 보죠? 그래서 한마디 했죠. "너 나를 아트로 생각하는 거니, 관객으로 생각하는 거니?"

Q. 낸시랭이 겪은 아픔을 승화시켰다는 점이 인상적이에요.

아티스트 낸시랭이 아닌 한 개인으로 사기 결혼과 가정 폭력, 리벤지 포르노 등을 겪으며 여성이 갖는 삶과 사회적 위치에 대한 물음이 생겼죠.

가장 중요한 건 시각과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는 거예요. 저는 작가로서 퍼포먼스를 통해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정치인이나 영향력있는 스타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이런 역할을 해준다면 세상이 유토피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작가로서 생각해요.

Q.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낸시랭은 다만 잘못된 선택을 했을 뿐이니까요.

분노도 참 많았죠. 그렇지만 다행히 제겐 아트가 있잖아요. 사지가 멀쩡하고 재능이 있으니 이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작품에 매진했고 작품에 몰두하다 보니 아픔과 고통, 번뇌의 비율이 낮아지더라고요.

걱정해주신 많은 대중들께 감사드리고 사생활로 피곤하게 한 점은 진심으로 사과드려요.

Q. 유독 대중은 여성들에게 냉정하죠. 대중의 낙인에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도 있고요.

리벤지 포르노 논란 당시 제 옆에 아무도 없었더라면 저 역시 극단적 선택을 했을지도 몰라요.

실명제든 벌금이든 악성 댓글 문화를 개선할 장치가 필요해요. 누군가 하늘나라로 떠났을 때는 다들 애도를 하지만 뒤돌아서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배설하듯 쏟아내죠. 비단 연예인 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 필요해요. 현대사회에서는 일반인에게도 꼬리표를 붙이기 쉽잖아요.

Q. 전 남편 전준주가 낸시랭의 이름으로 9억원에 육박하는 빚을 졌고 월 이자가 600만원에 달한다는 기사를 봤어요. 작품 활동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사채만 9억원이고 지금도 계속 갚고 있어요. 어른들이 사채 쓰지 말라는 말이 이런 건가 봐요. 사채 이자가 그새 더 늘었어요.

낸시랭을 쿠사마 야요이나 무라카미 다카시 같은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만드는 데에 투자하라며 아트비지니스를 하고 있어요. 3년 안에 작업 1점당 1억원 이상의 금액으로 평가되는 블루칩 아티스트가 될 거고 그럼 어느 주식에 투자하는 것보다 확률이 높을 거라고요.

마이애미 아트페어에서 성과를 거둬 다행이에요. 결과물이 있으면 투자를 받기 쉬워지니까요. 빛이 보이는 것 같아요.

Q. 작년 이맘때 유튜브 채널 '모이라 TV'를 오픈했죠.유투버에 도전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작년 겨울 사건이 터지며 두 달간 황윤정 프로듀서의 집에 피신해 살았어요. 그때 언니가 저를 다독이며 제안했죠. 당시 언니와 변호사인 (김)지선이와 일주일에 한번 한증막을 갔거든요. 어차피 만나는데 왕언니 셋이 수다 떠는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을 보여주면 어떻겠느냐고요.

Q. 채널 '모이라 TV'를 소개한다면.

당시 이혼 소송 중이었던 저와, 이혼을 겪은 황윤정 영화 프로듀서, 골드미스인 김지선 변호사가 합심해 만든, 연애 고민을 읽어주고 언니나 누나처럼 편안히 이야기하는 방송이에요.

1일 1 업로드를 하던 시즌 1을 마치고 일주일에 두번 업로드를 하고 있습니다. 돈을 들이지 않고 우리의 능력대로 운영하고 있어요. 부담 없이 즐겁게요.

Q. 유튜브로 이루고 싶은 게 있나요?

개인적으론 대리만족이 돼요. 제가 사랑과 결혼에 실패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까요. 예쁜 사랑과 행복한 모습을 보고 싶어요. 약간 엄마 같은 마음이랄까. 그러다 조회수와 구독자가 늘어 돈을 벌게 되면 감사한 거고요. 하하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2020년 아티스트 낸시랭의 계획은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에요. 4월 여수의 아트오션 갤러리의 개관 초대전으로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어요. 스칼렛 퍼포먼스도 함께 선보일 계획입니다. 10월에는 진산갤러리 전시가 있고요. 새해는 많은 일이 생길 거 같아요.

사진 ㅣ 강지윤 기자 tangerine@sportsseoul.com